낙동강에 새긴 옛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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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절, 고향에 내려와 어릴적 뛰어 놀았던 낙동강을 찾았습니다. 어릴적 낙동강변은 밭과 비닐하우스, 중간 중간 저수지와 연못, 샛강과 군데 군데 쓰레기더미가 있었고, 둑에서 강가로 한참 들어가면 몇 가구가 사는 동네도 있었습니다. 30년도 훌쩍 넘은 지금의 낙동강변은 4대강 사업때문인지 깔끔한 공원으로, 운동장으로, 캠핑장으로 생태학습장으로 변해 있더군요. 그때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길 없습니다. 

여름이면 아이들은 낙동강에서 물놀이를 합니다. 흰팬티 차림으로 모래톱을 따라 물장구도 치고 주변 갈대를 엮어 갈대배를 만들어 타기도 합니다. 그러다 실증나면 갈대밭에서 말똥게를 잡거나 재첩을 잡기도 했죠, 요즘이야 재첩들이 다들 엄지손톱만 하지만 그 옛날 재첩은 최소 500원 동전 크기 아니면 거들떠도 안봤죠. 말꼬락을 꼬물꼬물거리며 모래속을 뒤지면 엄지발가락 사이에 시커멓고 반질반질한 재첩이 딸려 올라옵니다. 

꼬마들 여럿이 한나절 잡으면 쌀한포대, 20kg정도는 너끈할 정도로 모래반 재첩반이었죠. 그래서 어떤 아이들은 재첩잡이를 부업해서 용돈 벌이도 했죠.     

이렇게 재첩이 지천이다 보니 재첩잡이 배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재첩잡이 배 때문에 물놀이 하는 아이들이 물에 빠져 죽는 일이 다반사로 생겼습니다. "이곳은 13명이 익사한 곳이므로 수영을 금지한다", 또 얼마 안가서 "이곳은 20명", 반듯한 모래사장에는 어김없이 익사자 수가 적힌 수영금지펫말이 세워져 있었죠. 

물론 수영미숙이나 급류에 휘말리는 등의 원인도 있지만 재첩잡이 배 때문에 아이들이 익사하는 이유가. 강바닥에 골이 많기 때문입니다. 재첩배들은 바닥의 재첩을 잡기 위해 쇠칼쿠리처럼 생긴 무거운 끌게를 바닥에 끌고 다녔습니다. 끌게가 반복적으로 지나가는 자리는 깊은 골이 만들어지고 이곳으로 급류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눈으로는 알 수 없는 강바닥의 골 때문에 갑자기 수심이 깊어지며 회호리같은 급류에 휘말립니다. 도리도리 수영이나, 개수영 정도 겨우 할 수 있는 아이들에게는 죽음의 골이나 마찬가지였죠. 이렇게 초등학교 5학년때는 내짝지가 익사했고 또 동네 아는 누나가 그렇게 죽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낙동강에서 난 재첩은 아이들의 목숨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꼬마와 동생네 꼬마를 대리고 무작정 낙동강으로 달렸습니다. 갑자기 어릴때 뛰어 놀던 곳이 보고 싶어 졌습니다. 나이가 드는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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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대교가 지나는 낙동강대교 아래 샛강입니다. 어릴적에는 걸어서 한시간 거리여서 여간해선 잘 오지 않던 곳인데 오늘은 차로 오니 몇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류독감때문에 강으로 가는 길들을 모두 막아 놨습니다. 어쩔수 없이 여기까지 올라 왔습니다. 

조류독감이 걸리거나 말거나 철새들은 잘도 살아갑니다. 자연에 사는 철새에게 독감과 공장축산속에 사는 닭에게 독감은 천지 차이 입니다. 

낙동강의 갈대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갈대가 자라는 뻘밭아래에는 여전히 말똥게가 살고 있을까요?

가만 냅두면 하루종일 게임만 하는 아이들 입니다.

오늘은 탐험가가 되어 봅니다. "얼음은 위험해" 

부들을 걲어서 후~ 하고 불어 봅니다. 

부들부들 솜털같은 씨앗들이 지천으로 날아 다닙니다.  

철새똥에서 저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검출됐다고 합니다. 낙동강 분류로 들어가는 모든 길이 출입통제 됐습니다. 결국 어릴적 저의 놀이터는 가 볼 수 없게 됐습니다. 

차를 돌려 점점더 하류로 이동합니다. 요트가 나오고 루어낙시 하는 사람들도 보입니다. 

결국 철새도래지인 을숙도까지 왔습니다. 이곳도 다르지 않습니다. 문은 굳게 닫혀 어디에서도 철새를 볼 수 없습니다. 아쉬운 옛기억을 뒤로 물리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추석때 또 와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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