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포 팽나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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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차로 30~40분이 넘게 걸리는 먼 곳으로 중학교를 다니게 됐습니다. 한 반 64명 가운데 5명 만이 이 먼 학교로 배정 받은거였습니다. 뺑뺑이 였는지 뭔지 선정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회수권 두 장으로 낯 선 곳에서 낯 선 친구들과의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까까머리의 기억들

난 생 처음 머리를 빡빡 밀고 유년시절을 보낸 동네를 벗어나 면서 많은 기억들이 생겼습니다. 학교에서 30분 거리에 있었던 구포장은 5일장인데 장날이 되면 친구들과 자주 구경가던 곳 이기도 했습니다. 만병통치약을 팔던 약장수며, 뱀장수, 차력쇼, 초강력 회충약 한알에 똥꼬에서 회충들이 우루루 빠져나오기도 하고, 강아지와 고양이, 토끼며 닭과 오리같은 가축들도 산 채로, 또는 현장에서 잡아서 팔던 장 날 구경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지금은 멸종위기종이 된 '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고요. 

구포동 팽나무를 찾아서...

그리고 학교에서 산을 끼고 밭 두렁을 따라 구포장으로 가던 어느 길목 즈음에 위풍당당하던 팽나무가 지금까지 머릿속 한 귀퉁이에 남아 있습니다. 나무에 관심이 전무했던 당시에도 그 나무는 아주 크고 좋아 보였습니다. 

어릴적 살던 곳, 놀던 곳, 친구들이 하나 둘 생각 나는 나이가 된 지금, 얼마전 구포 부근으로 지나갈 일이 있었는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다녔던 중학교와 팽나무를 찾아 보고 싶어졌습니다. 찾아간 동네는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고 지하철역이 들어오고 넓은 길이 생겼습니다. 네비가 없었으면 절대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미지의 동네가 되어 버렸습니다.  

30여년전 만해도 구포여상, 모라여중, 구포중학교로 이어지는 백양산 자락은 주위가 모두 산 이었습니다. 학교 아래 공동묘지였던 산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높아만 보였던 학교 뒤, 백양산 중턱에는 전망대크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 산 봉우리 보다 더 높은 아파트들이 줄줄이 세워졌습니다. 말 그대로 쌍전벽해가 이런것인가 봅니다.  

인터넷을 통해 '구포 팽나무'를 검색하니 상세하게도 위치와 많은 정보가 나와 있습니다. 기계음을 따라 도착한 이곳은 처음 중학교에 가던 날 처럼 낯 선 느낌의 장소가 되어 있었습니다. 

팽나무 아래에 서면 낙동강이 훤히 내려다 보인 동네가 높은 아파트와 빌딩숲으로 가려져 있습니다. 쌍전벽해가 이런건가 봅니다.

기둥에 떠 받쳐지고, 쇠줄에 세워진 팽나무 줄기들이 안스럽기 까지 합니다.

시멘트집으로 포위된 팽나무

좁은 골목을 올라 찾아간 팽나무, 앞 산은 연립주택으로 가려졌고 팽나무 주위는 사방 집들로 포위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팽나무가 있는 당산은 휀스가 쳐 져 있어 원천봉쇄어 있습니다. 지금 즈음이면 한창 꽃이피고 파릇한 잎사귀가 나 있어야 할 때인데 30여년전의 풍채있는 모습은 사라지고 앙상한 죽음 직전의 모습만 남았습니다. 

지역이 개발되면서 당산나무 주위로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섰고 산 위에서 낙동강을 굽어보던 구포 팽나무는 주택지 한 가운데 고립되어 버렸습니다. 생육환경이 악화되어 버린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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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9호 천연기념물 구포동 팽나무

 

팽나무 고목 아래 있는 당집은 얼마전 새로 옮긴 것이라고 합니다. 원래의 당집은 나무가지를 압박하고 있어서 허물었다고 합니다. 당집이 있는것으로 봐서 구포동 팽나무는 신목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 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종류의 신목이 있지만, 신목 바로 옆에 당집이 있는 곳은 많지 않다고 합니다.  

죽어가는 팽나무에 금줄이 걸려 있습니다. 소생을 위한 마지막 기도인가요.

고사 직전의 팽나무 주위에는 서너그루의 어린 후계목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팽나무 그루터기는 이미 고사해버려 버섯들의 차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시한부의 삶, 구포 팽나무

알고 보니 천연기념물 309호로 지정된 '구포 팽나무'는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2016년 한 신문 기사에  '500살 구포 당숲 팽나무 '시한부 2년' 이라는 제호로 기사가 나와있습니다.  '2016년 4월 천연기념물 제309호 구포동 당숲의 모니터링을 경상대학교에 의뢰한 결과, 나무의 10%를 제외하고는 고사한 상태로 팽나무 수명이 2년 정도 남은 것으로 조사됐다.' 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2년째가 된 2018년 봄, 어릴적 기억을 되짚어 찾았던 '구포동 당숲 팽나무'는 생기를 잃고 언제 쓰러져도 이상할 것 없는 듯 커다란 쇠봉에 떠받쳐 있습니다. 

높이 18미터, 둘레 6m 수령 500백여년의 고목 '구포 팽나무'는 느릅나무과로 느티나무와 한 가족입니다. 보통 느티나무나 팽나무처럼 화려한 꽃을 피우지 않고 크고 맛있는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들이 오래 산다고 합니다. 팽나무와 한 가족인 느티나무가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전역에 500살이 넘은 느티나무는 흔하죠, 제주도 애월읍의 팽나무는 1000살이 넘었지만 여전히 건강하다고 합니다. 

강원도 경기도 이남에 주로 사는 팽나무는 느티나무와 함께 마을의 정자나무이기도 하고 마을의 안녕을 빌어주는 신령스런 당산나무이기도 합니다. 낙동강 구포나루를 내려 보던 팽나무, 뱃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하고 마을을 지켜주던 팽나무, 이제는 그의 안녕을 기원 합니다. 

전설 속 애틋한 처녀의 기다림이 담긴 구포 대리마을 당산나무, 팽나무, 정월 대보름이면 이곳에서 당산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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