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여행_헬파이어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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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아픔이 살아 있는 곳, 태국 칸차나부리

오늘은 8.15광복절입니다. 얼마전 다녀온 곳이 떠 오릅니다. 이곳은 70여년전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참혹했던 지옥의 장소였습니다. 광복절을 계기로 그날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포스팅을 합니다. 

이곳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의 남방전선이 있던 버어마와 가까운 태국의 칸차나부리라는 곳입니다. 그리고 영화 '콰이강의 다리'로도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태국의 칸차나부리는 인도차이나 전선에서 생포된 호주,영국,네덜란드 병사들을 수용했던 포로수용소가 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있던 전쟁포로들은 일본군이 인도에 주둔하는 영국군을 공격하기 위해 태국과 버어마(미얀마)간 철도를 건설하는데 동원됐습니다.

여기 버어마-태국간 철도 중에서 '헬파이어 패스'라는 처참한 곳은 태국에서 버어마간 415km의 철도 연결 공사구간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망자를 냈던 곳이기에 기념관을 지어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버마에서 태국간 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20만명의 전쟁포로와 아시안들이 2교대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철도 공사에 동원됐고 그 가운데 10만명 이상의 전쟁포로와 민간인들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단지 곡갱이와 삽 만으로 7개의 산을 깎고 절벽과 밀림을 헤쳐서 415km의 철길을 내는데 불과 20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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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파이어 기념관에서 이어진 4km 구간의 지도 입니다.

1942년 10월 시작된 태국에서 버마간 철도는 1943년 10월에 완공됐습니다. 이 철도를 통해 인도를 공격할 계획이었지만 연합군의 공격으로 실행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헬파이어 패스, 꼰유(Konyu) 절벽

기념관에서 이어진 4km의 헬파이어 패스 끝까지는 왕복 3시간이 걸립니다. 가파르고 험한 구간이 많아 '굿 피지컬 컨디션 퍼슨'만 가라고 합니다. 

우리 일행은 버마-태국간 철도의 헬 파이어 패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600m의 꼰유(Konyu)절벽 구간을 걸어 보기로 합니다. 기념관을 돌아 대나무 울창한 구불구불한 나무데크를 따라 5분여를 내려가면 역사의 현장에 설 수 있습니다.

70년이 넘은 세월에도 패이고 비틀어진 철도의 침묵은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버마-태국 헬파이어 패스 가운데 가장 유명한 600m 꼰유절벽 구간은 호주와 영국 전쟁포로들이 1943년 4월25일 작업을 시작한 곳입니다. 이곳은 크게 두개의 섹션으로 나뉘는데 25m의 깊이를 깍아 만든 73m의 길과 8m를 깍아 만든 450m의 길이 구간입니다. 

지옥불 헬파이어패스

꼰유절벽 구간은 투입된 포로의 70%가 사망할 정도로 악명을 떨친 구간이기도 합니다. 하루  2교대로 진행된 공사는 야간에는 횟불을 밝혀서 공사를 했는데요 그 모습이 마치 '지옥불'같았다고 해서 헬파이어 패스라 불리게 됐다고 합니다.  

차돌같이 단단한 바위에는 드릴을 꼿았던 흔적들도 여기 저기 보입니다.

산허리를 지나면 본격적인 암벽구간이 나옵니다. 그리고 곳곳에 빨간 양귀비꽃과 호주국기, 십자가가 놓여져 있습니다.

빨간 양귀비꽃(포피)은 영연방에서 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군인의넋을 기리는 의미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숨져간 호주군인들을 추모 하기 위해 해마다 많은 호주인들이 이곳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1943년에 헬 파이어 패스에서 숨진 통신병 잭 톰슨과 그의 부인 엘리스 톰슨의 사진속 모습에서 애절한 한 가족사가 슬프게 다가 옵니다.  

잊지 않도록...

25미터의 바위를 깍아 만들어간 구간이 나타납니다. 철로는 걷혀졌고 철길 한 가운데는 키 큰 반얀트리가 주인인냥 자리를 잡았습니다.

73년전 헬파이어 패스의 철길입니다. 

헬파이어 패스에서 질병과 노역으로 숨진 포로들의 대부분이 호주군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입구의 기념관도 호주상공회의소에서 세웠다고 합니다.

70년이 넘어도 침목에 박았던 쇠못들과 쇠붙이 조각들은 여전히 건장한 모습입니다. 

호주에서 유명한 위인중 한명인 에드워드 위어리 던롭의 추모비 입니다. 

는 2차세계 당시 이곳에 포로로 수용되어 있으면서 헬파이어 공사에서 부상당하고 죽어가는 동료들을 위해 헌신한 군의관 이기도 합니다.  

추모비 마지막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고향에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 줘라, 당신의 오늘을 위해 우리들의 내일을 헌신했다고..."

1942년에서 45년까지 버마 태국 철도 건설에 희생된 넉을 기리는 추모비를 끝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여전히 굴러갈 것 같은 갱차도 보입니다.

단단한 바위 깊숙히 박혀 부러진 쇠말뚝 보입니다.

일본 관광객들도 보입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느끼고 갈까요?

 


헬 파이어 패스 메모리얼

 당시 포로로 철도 건설에 동원됐던 피터 러시포터가 만든 '평화의 그릇'이라고 합니다.

연합군 포로들이 참여했던 최악의 4km 헬 파이어 패스 구간의 디오라마 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점령한 나라들과 전쟁 포로들에 관한 설명 

 태국 칸차나부리의 '지옥불 길'이 단지 먼 나라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건 우리 또한 당시 일본에 의한 피해 당사자이기 때문이겠죠. 역사는 암기가 아닌 이해과목이라고 합니다. 부디 이렇게 아픈 역사를 외우지 않길 바랍니다. LEST WE FORGET~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두발의 원자폭탄과 소련의 만주 침공으로 일본은 4년에 걸친 태평양 전쟁과 15년에 걸친 중일전쟁의 막을 내리게 됩니다. 15년간의 전쟁으로 일본은 최소 3백만명이 사망하고, 중국인은 1천5백만명, 인도네시아는 백만명, 필리핀과 조선은 각각 50만명이 사망함으로 총 2천만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언제나 처럼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민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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