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예찬
느티나무 만큼 소박하면서 욕심이 없는 나무가 또 있을까요? 다른 나무들 처럼 화려한 꽃을 피우지도, 맛있는 열매를 만들지도 않습니다. 사시사철 그 모습 그대로 무뚝뚝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입니다.
욕심없고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이 장수하듯 느티나무도 다른 나무들에 엄청 장수하는 나무입니다. 우리나라에 1000살이 넘는 노거수 60여 그루 중에 25그루가 느티나무라고 하죠, 그리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느티나무도 열 그루가 넘습니다.
중학교 다닐때 학교 가는 길에 아주 큰 정자 나무가 한그루 있어서 날이 더울땐 오며가며 잠깐씩 앉았다 가기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 나무가 느티나무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수령이 500년이 넘은 부산에서 가장 오래되어 천연기념물 309호로 지정된 팽나무 였습니다.
오래 사는 나무를 꼽으라면 울릉도 행남마을에 2000년된 향나무가 있고, 정선 두위봉의 주목은 1400살, 강원도 영월에는 1300년된 은행나무가 있고 삼척 도계에 1000년된 느티나무와 속리산 법주사의 정이품송은 6백살이며 서귀포 중문에도 600년이 넘은 팽나무가 있습니다.
장수하는 나무가 있으면 그 반대인 나무도 있습니다. 아카시아라고 잘 못 불려지고 있는 '아까시'나무와 가구재로 쓰이는 오동나무와 벚나무, 사시나무와 낙엽송 등이 수십년 정도의 수명을 가진다고 합니다.
평균적으로 볼 때 오래사는 나무는 화려한 꽃과 큰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들입니다. 나무가 꽃 한송이를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제천 어느 산골마을의 수형이 아름다운 느티나무 입니다.
느티나무는 나이가 들 수록 위로 가지가 넓게 뻗쳐 시원한 그늘을 만들죠, 은행나무, 팽나무, 회화나무들도 정자목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느티나무가 80%나 된다고 합니다. 느티나무가 이렇게 가지를 넓게 뻗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을 어르신들 모여서 이야기 나누고 낮잠재우기 위해서 일까요?
느티나무는 유전적으로 나뭇가지를 넓게 펼치는 속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로수처럼 촘촘하게 심으면 느티나무는 잘 자라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느티나무는 모여 살기 보다는 나홀로 서 있는 경우가 많죠, 홀로 있어서 외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더 멋져 보이기도 한답니다.
부안 내소사 천왕문 앞의 느티나무, 나이가 1000살이라고 합니다. 해마다 음력 정월 보름이면 인줄을 치고 당산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느티나무의 특징 중에 하나는 자유생장한다는건데요, 봄에 잎을 한번 만들고 여름에 또 두번째 잎을 만든다고 합니다. 이를 춘엽과 하엽이라고 하는데요, 그 덕분에 다른 나무에 비해 빨리 자란다고 합니다. 보통 300년 정도의 느티나무 잎이 대략 500만장이라고 하니 광합성으로 얻는 에너지가 어마어마 하겠죠?
그리고 느티나무는 목재로서도 훌륭합니다. 결이 곱고 윤이나는 황갈색의 목재는 잘 썩지도 않고 해충에도 강하다고 합니다. 또 잘 휘어지지 않고 마모에도 강하고 단단하기 까지 해서 궁궐이나 사찰의 기둥으로 사용되고 관의 재료로도 쓰였다고 합니다. 신라시대 왕이 묻힌 천마총에서 느티나무 관이 출토됐고,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이 느티나무로 만들어 졌습니다. 또한 느티나무는 우리나라 전통 가구재인 오동나무와 먹감나무와 더불어 3대 우량목으로 대접받는 고급 목재입니다.
옛날부터 서민은 소나무집에살고 소나무기구를 쓰다 소나무 관에 묻히고
양반은 느티나무집에서 살고 느티나무 기구를 쓰다 느티나무 관에 묻힌다는 말도 있습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훌륭한 나무입니다.
합천 해인사의 느티나무 입니다. 이 나무는 옛 문헌에 기록으로 남아 있어 그 나이를 알 수 있습니다. 신라 40대 애장왕 3년(서기 802년), 순응과 이정이라는 두 스님이 기도로 애장왕후의 병을 낫게 하자 애장왕이 보답으로 두 스님의 수행하던 이곳에 해인사를 창건할 수 있게 했는데 이를 기념해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이가 1200살이 되는거죠, 그러나 아쉽게도 1945년 천수를 누리고 고사해 지금은 아랫 둥치만 남이 있습니다.
창덕궁의 느티나무 단풍
느티나무는 가을이 되면 노랗게 물이 드는데요, 까만색 나무색(수피)과 보색을 이뤄 더욱 눈에 두드러집니다. 빨갛게 물드는 단풍나무 보다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느티나무의 노란 단풍이 더 좋은것 같습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한자로는 양수리의 400년된 느티나무 입니다.
강화도 고려산 청련사의 300년된 느티나무 입니다.
높이 20미터 둘레 6미터 수령 400년, 경기도 영회원 느티나무 입니다. 성인 서너명이 팔을 뻗어야 안을 수 있는 지름입니다.
느티나무 살펴보기
느티나무 껍질은 짙은 회색으로 나이가 들면 수피가 덕지덕지 일어나서 떨어지며 그 속에는 황갈색의 새살이 보이는것이 특징입니다.
오래된 느티나무가 보이면 그 아래 둥글고 네모난 조각들을 주워서 어디에서 떨어졌나 퍼즐 맞추듯 맞춰보는것도 재미있습니다.
사람이나 나무나 나이가 들면 이렇게 피부 조각들이 벗겨지나 봅니다.
고급 목재로 귀한 느티나무가 우리나라 전역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이유는 정자나무나 당산나무로 신성시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무를 해하면 마을에 재앙이 생긴다고 믿었기 때문에 함부로 자르거나 뽑지 못했겠죠.
한가닥 줄기만 남은 창덕궁의 느티나무, 수령은 알 수 없으나 창덕궁이 생기기 그 이전 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나무였지 않을까요?
오래된 느티나무는 대부분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는 탓에 썩거나 뚫린 구멍을 죄다 시멘트같은 것으로 메꿔놓았습니다. 그 덕분에 느티나무의 틈새를 보금자리로 살았던 새들이 떠나는 일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동그란 입구가 이쁜 새집 입니다. 새들도 함께 살아 갈 수 있도록 자연에 맡기는게 더 낫지 않을까요?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 입니다. 느릅나무과는 잎아랫부분(잎저)이 정확하게 대칭이 안되는게 특징입니다.
느티나무의 잎 모양은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규칙적인 톱니가 있는 긴 타원형입니다. 게다가 잎맥의 간격이 일정하고 톱니 꼭지로 정확하게 이어지는단정한 모습이 좋습니다. 느티나무 잎 처럼 정갈하고 단정한 나뭇잎은 또 없습니다.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잎의 뒷면에는 공기가 드나드는 기공이라는 숨구멍이 있습니다. 식물의 호흡장치이기도 합니다. 이 기공을 통해서 광합성에 필요한 이산화탄소는 들어가고 산소는 빠져나옵니다.
나무에서도 가장 많은 변이가 일어나는 부분이 나뭇잎입니다. 그 반대는 꽃이죠, 그래서 식물을 동정할때는 꽃을 보는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그런데 느티나무만은 유독 그 변이가 통하지 않는것 같습니다. 땀 한땀 정확히 톱니의 끝으로 향하는 잎맥만 봐도 단번에 "너 느티나무 구나"라고 알 수 있습니다.
혹시 느티나무의 꽃이나 열매를 본 적이 있나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서 정말 작정하고 관찰하지 않으면 보기 힘듭니다. 4~5월이면 잎 겨드랑이에 연두색 꽃이 피었다가 금방 자취를 감추는데요, 10월이면 팥알보다 좀 작은 열매가 줄기에 붙습니다.
그리고 느티나무는 단풍나무 씨앗의 헬리콥터같은 날개도 없고, 느릅나무처럼 부채같은 날개도 없지만 느티나무 씨앗이 엄마 품에서 멀리 멀리 가라고 작은 잎이 여러장 붙은 잎 줄기 채로 뚝 잘라 그 잎을 날개삼아 멀리 날려보내는 영특한 번식 전략을 만들었습니다.
우아한 폼새와 정갈한 나뭇잎에 머리 마저 영리한 느티나무,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내년 봄에는 느티의 꽃을 꼭 사진으로 담아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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