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홍역, 꽃무릇
엊그제 전북 진안의 한적한 지방도를 지나다 풀밭위로 붉게 핀 꽃 군락을 보았습니다. 멀리서 봤지만 대략 어떤 꽃인지 짐작이 가더군요. 바로 꽃무릇 이라는 꽃 입니다.붉은색 꽃이 군락을 이뤄 피기에 눈에 잘 띄는 꽃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쯤이면 서해 변산반도 아래, 고창 선운사와 남쪽 끝, 영광 월출산 불갑산에도 꽃무릇이 만개했겠군요.
보통 가을에는 흰색이나 보라색, 노랑색의 가을꽃들이 피는데 반해 꽃무릇은 유독 붉은 꽃을 피워 가을에 피는 꽃 가운데 가장 화려한 꽃 이기도 합니다.
꽃무릇은 보통 상사화와 혼동하기도 하는데, 꽃무릇은 9월 말께 개화 하고 꽃잎이 가늘고 빨간색을 띠는게 특징인데 반해 상사화는 여름에 피고 색깔이 노랑이나 주황색 계통으로 꽃잎이 꽃무릇보다는 넓습니다.
그리고 이 꽃은 경기 강원에서는 잘 볼 수 없기에 윗동네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꽃이기도 하죠. 그런데 예전에 서울 성북동 북악산 아래에 있는 길상사에 갔을때 보니 경내에 꽃무릇이 붉게 피어서 깜짝 놀랬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핀다면 한 번 가봐도 좋을것 같습니다. 길상사는 무소유를 실천하신 법정스님이 열반하신 사찰로 유명합니다.
선운사,불갑사,길상사 꽃무릇 이야기를 보니 뭔가 절과 관계가 있는것 같죠? 그런데 꽃무릇의 빨갛고 가늘게 말려 올라간 꽃잎과 수술대의 생김새는 경건한 절의 이미지와는 전혀 딴 판 처럼 보입니다. 제 느낌에는 닳고 닳은 속세의 느낌이랄까요?
보통 사찰에는 매화나 불두화,산수국 같이 정갈하고 고고한 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 반대의 느낌인 상사화나 꽃무릇이 유독 사찰 주위에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꽃무릇이나 상사화의 알뿌리에 독성이 있어서 탱화를 그리는 재료로 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뿌리를 빻아 물감과 함께 섞어서 부처님의 그림인 탱화를 그리면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는 방부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꽃무릇은 한약명으로 석산이라고 하는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 알뿌리식물입니다. 9월말에서 10월에 잎이 사라진 비늘줄기에서 꽃대(화경)이 30~50cm 정도 올라와서 커다란 꽃을 피웁니다. 꽃무릇은 알뿌리로 번식하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꽃이 시들어 쓰러지면 그 위에 녹색의 잎이 나옵니다. 꽃이 피면 잎이 없고 잎이 피면 꽃이 없는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꽃, 그래서 슬픈꽃, 꽃무릇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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