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관련된 잡지에서 사진 찍는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가 “어떤 산이 가장 좋아요?”이라는 질문이다. 산을 잘 몰랐던 초창기에는 그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산 기자였지만 상당히 부담스러운 질문이었던 것이다. 그럴 땐 무난하게 “국립공원 산이 좋죠” 라고 대답하곤 했다.
우리나라에는 4000여개의 산이 있다고 한다. 그 중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은 16개이다. 이들 국립공원은 귀하디귀한 보물과 같은 존재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 중에서도 수려한 자연경관을 품고 희귀동식물들이 살아 숨 쉬는 천혜의 명산들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 어떤 산이 가장 좋으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국립공원이 좋다는 나의 대답이 그저 둘러대는 답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사람들은 천혜의 자연에서 삶의 에너지를 얻고 아픈 심신도 치유한다. 혹자는 산이 없었으면 병원을 수도 없이 지어야 했을 거라고도 한다. 공감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소중한 공간인 국립공원이 몸살을 앓고 있다. 잘 닦인 등산로는 등산객의 입장에서는 편안함이지만, 산의 입장에서는 인위적인 개입이다. 조망이 좋은 터에 이르면 여지없이 전망 데크가 나타나고 조금이라도 험한 구간에는 웬만하면 철 계단과 나무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물론 등산객의 편리와 안전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케이블카까지 설치해 산을 놀이공원화 한다는 것은 여간해서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 일이다.
얼마 전 한 보도를 접했다. 산이 받는 스트레스 지수가 가장 높은 곳으로 ‘국립공원 덕유산 향적봉 구간’이 꼽혔다고 한다. 사람들이 해발 1,520미터인 덕유산 설천봉까지 스키장 곤돌라를 타고 오른 후, 이곳에서부터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1,616미터) 까지 걸어 올라가기 때문이다. 걸어서 3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겨울이면 향적봉으로 향하는 인파가 줄을 잇는다. 겨울 주말에는 곤돌라를 타기 위해 번호표를 받고 한 시간은 기본으로 줄을 서야 할 정도다. 이들에게 덕유산은 30분이면 오를 수 있는 동산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상에 올랐을 때 발 아래로 뻗어 내린 장쾌한 조망과 시원한 바람인가? 정상에 올랐다는 희열과 성취감 때문에? 물론 그것도 좋은 이유다. 그러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광만이 산의 전부가 아니다. 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산길을 걷다보면 더 가까이에서 산이 주는 많은 것을 보고 즐길 수 있다. 산이 좋은 이유는 사실 수도 없이 많다. 산길을 걷다 노랗게 물든 엄나무에서 나는 달콤한 설탕 냄새를 맡았을 때 그 뜻밖의 반가움과 설렘 같은 것을 나는 놓치고 싶지 않다.
지난 십년 가까이 직업적으로 수많은 산을 올랐다. 길도 제대로 없는 산부터 국립공원 명산까지, 그리고 봄 산, 여름 산, 가을 산, 겨울 산으로 절기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다양한 산의 모습도 보았다.
어떤 산에 가면 눈을 뚫고 피어나는 노란 복수초를 볼 수 있는지, 어떤 산이 진달래가 많고 철쭉이 아름다운지, 그리고 어떤 산에 가야 봄꽃을 많이 볼 수 있는지, 풍광은 어떠한지, 능선은 어느 산이 좋은지, 정상 조망은 어디가 좋은지, 삐죽삐죽 솟은 기암의 풍경은 어느 산에 가면 볼 수 있는지, 아름다운 폭포와 물이 많은 산은 어디인지, 완만하게 걷기 편해서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산은 어디인지 등등. 이런 세세한 것 하나하나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그 각각의 소중한 가치도 몸소 알게 됐다.
산을 즐기는 방법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보자. 굳이 정상까지 가야할 이유가 없다면 중턱어디쯤까지 가도 좋다. 아니 아예 둘레 길을 한 바퀴 도는 것도 그 산을 즐기는 한 방법이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때가 가장 아름답다. 인간이 자연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순간 자연은 급속히 무너져 버린다. 산이 우리에게 주는 소중한 것들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산의 미래는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이 글은 월간 '함께사는길' 2월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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