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홍난파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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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화유산 홍난파 가옥

강북삼성병원 뒷길에서 교육청을 지나 월암공원 끝머리에 담쟁이 넝굴이 올라 앉은 꽤나 근사한 붉은 벽돌집이 눈에 보입니다. 이곳이 바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홍난파 선생이 사셨던 집이라고 합니다.

 

난파 홍영후(1898~1914) 선생은 '봉숭아'를 비롯한 많은 가곡과 동요 백곡을 남기셨는데요, 우리나라 최초의 바이얼리니스트로 1936년에는 kbs의 효시가 된 경성방송국 관현악단을 창설해 지휘하시기도 한 방송음악의 선구자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근대문화유산으로 홍난파 가옥 앞 마당에는 홍난파 선생의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당시 서양식 가옥의 특성이 잘 보존되어 있는 홍난파 가옥입니다. 지상,지하 각각 1층으로 내부는 35평 정도로 그리 넓지는 않습니다. 문화재청이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등록문화재 제90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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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1층 지상1층인 35평 정도 홍난파 가옥입니다. 80년의 세월에도 빗살무늬 마루바닥이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습니다. 

 

 홍난파 선생의 음악에 대한 연도표가 사진과 함께 알기 쉽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43세의 젊은 나이에  일본의 고문으로 늑막염이 재발돼 요절하셨다고 합니다.

 

 홍난파 선생의 봉선화 악보와 음악가 홍난파의 문학세계를 기록한 '홍난파 최후의 악수', '조선동요백곡집'같은 출판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최초의 실내악단 창시자이며 최초의 음악평론가, 최초의 음악 잡지 발행인, 최초의 방송 관현악단 지휘자로 근대음악을 개척한 분입니다. 그리고 창작 음악의 선구자로 창가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한국 창작 음악의 수준을 예슐적인 차원으로 끌어 올렸으며, 창작 동요 , 창작가곡, 창작기악곡 분야를 개척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홍난파의 친일행적에 관해 왜곡하거나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일본을 위해 가요를 만들었던 그의 작품세계 또한 우리가 판단해야 할 부분이겠죠? 

 

 홍난파 선생의 가족사진과 졸업사진, 음악회 사진들과 돌아가신 뒤 1965년에 받은 문화훈장증과 훈장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홍난파선생의 외손녀 내외분이 화요일과 목요일, 홍난파 가옥을 지키고 계시는데요, 화,목요일 방문하시면 외손녀이신 홍난표씨가 연주하는 홍난파선생의 음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홍난파 선생의 유년시절 모습입니다.

 

 첫째 부인과 사별후 둘째 부인과 딸, 그리고 학생들과 홍파동 자택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홍난파 선생의 외손녀이신 홍난표씨 입니다. 이화여대 음대를 졸업하셨다고 하는데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피아노 연주를 하고 계십니다.

 

 고향의봄, 봄처녀, 장안사 등 홍난파 선생이 만든 가곡들이 칠순이 넘은 외손녀의 손가락을 통해 절절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근대음악의 선구자로 불리는 홍난파가 1935년부터 1941년 생을 마감할 때 까지 살았던 곳입니다. 이 집은 1930년 독일인 선교사가 지은 서양식 근대가옥인데요, 외형은 서양식 벽돌 가옥의 전형을 따르고, 건물의 기초부분에 해당되는 지하 1층은 화강석 석재를 이용해 르네상스식 건물에서 볼 수 있는 벽면을 거칠게 마감해 질감을 강조한 뒤, 벽체에 해당하는 상부는 붉은 벽돌로 마감했습니다. 

 

홍난파의 집은 하절기인 (4월~10월) 11시~17시까지 오픈하며, 동절기인 (11월~3월)11시~16시까지 개관하며 주말 및 공휴일은 휴관합니다. 연락처는 사무실(070-8112-7900), 운영자(010-3728-7419) 서울시 종로구 홍파동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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