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되나...
커다란 박배낭을 맨 등산객들이 서울광장으로 줄지어 들어온다. 빌딩숲이 둘러싼 서울광장 잔디밭에 텐트가 등장하고 매트리스와 침낭이 자리를 잡는다. 마치 캠핑장이라도 된 것 같다.
21일 금요일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녹색당, 동물보호단체 '케어', 대학산악연맹, 산악인의모임 등 4백여명이 서울광장을 설악산 삼아 산양들과 함께 밤을 보내는 '산양과의 동침'프로젝트를 열었다.
이날 산악단체와 산악인들도 힘을 보태 케이블카 반대 운동을 펼치는 환경단체의 1박2일 문화제에 동참했다.
김영도, 정광식, 윤대표, 정승권, 장경신, 윤대훈, 이기범, 최석문, 이명희 등 전국산악인들의 모임 산악인들과 대학산악연맹 정영목 회장, 대한산악연맹 김재봉 전무이사 등이 참석했다.
산악단체들이 준비한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현수막들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운동을 하고 있는 박그림<오른쪽> 녹색연합 대표와 산악인 김영도 선생. 35년 전, 박 대표의 결혼식 주례를 김영도 선생이 하셨다고 한다.
산양과의 동침 프로젝트에 앞서 '설악산케이블카반대' 라고 쓰인 30미터의 긴 펼침막을 든 참석자들이 케이블카 반대을 외치고 있다.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다른 국립공원에도 줄줄이 들어서게 될 것이라는 의미의 '도미노 포퍼먼스'를 하고 있다.
설악산에는 이미 1970년 부터 권금성에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다. 그리고 전국에 155개 케이블카가 운영있는 상황이다.
설악산에서 지리산, 온갖 국립공원에서 우후죽순처럼 케이블카 설치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정부때 부터다.
케이블카를 놓고 길이를 연장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면서 부터 이 사태가 벌어지게 됐다. 이제 국립공원 명산들 마저 4대강의 꼴이 되려는 걸까,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은 지난 2012, 2013년 환경훼손 논란으로 이미 부결된 바 있다. 그러나 강원도 양양군이 다시 사업안을 제출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양양군이 강원도가 설악산 케이블카에 다시 도전한 가장 큰 배경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해 말 "평창올림픽에 맞춰서 설악산 케이블카를 조기 추진하라"고 한 마디 하자마자 환경부가 나서고 문화체육관광부가, 기획재정부가 나서서 설악산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고 안달이 나 있다.
케이블카는 산양이 살고 있는 산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케이블카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200년이 넘는 잣나무와 신갈나무숲이 잘려져 나가야 한다.
여성 산악회 박미경씨도 피켓을 들고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참석자는 산양그림이 그려진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나왔다.
케이블카 반대 대형 펼침막 뒤로 시민들이 무심히 지나가고 있다.
'고대 70산산회' 회원들도 케이블카 절대 반대의 한목소리를 냈다.
'경희대 팔봉산악회' 회원들이 '4대강은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결국에는 북망산' 이라는 의미심장한 현수막을 준비했다.
경북산악연맹에서 참석한 산악인
산양도 문화제에 동참하고 있다.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를 몸으로 외치고 있는 녹색연합 박그림 공동대표. 얼마전에는 설악산 오색에서 대청봉까지 박그림대표와 신부, 목사가 10시간동안 오체투지로 오르는 순례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주 부터는 광화문 KT앞에서 농성장을 차리고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등산 스틱에 걸어 놓은 전국산악인들의모임 피켓, 배낭에 부착하고 다니기 좋게 만들었다고 한다.
저녁7시에 시작된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문화제는 10시30분에 공식 행사를 마쳤다.
문화제에 참석한 다문화 가족
가리왕산에 스키장 건설 반대에 이어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는 가수 '서동요'의 노래공연이 이어졌고, 뒤이어 전 불교환경연대 집행위원장 법응스님이 연단에 올랐다.
법응 스님은 "누구는 그 넓은 땅에 빨랫줄 하나 걸치는것 뿐이라고 하지만 국립공원은 명주실 한올 걸치는것도 안된다. 국립공원은 생태계의 마지막 보루다. 생태계가 아니라 인간과 삶에 마지막 보루다. 이 마지막 보루가 지켜지면 생명과 환경과 희망의 출발점이 되기도 할 것이다."라며 직접 만든 설악산 8경을 낭송했다.
4대강과 여러 환경파괴현장에서 발언보다는 노래로 말을 하는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김정욱 교수. 그가 부른 노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설악산아 너는 왜 울지 않고
아름다운 저 설악산
오늘밤 달빛아래 은근한 자태
더욱 가슴에 사무친다
만물이 잠든 고요한 이 밤에
나홀로 깨어 너를 사모하네
내 사랑하는 설악산아
너는 어찌 아니울고
홀로 나만 울리나
내눈에 네눈에 그리운
그대 모습 보여주게'
이날 행사에 동참한 대학산악연맹 정영목 회장.
정 회장은 "이명박 정권때 강을 가지고 장난을 치더니 이제 산으로 옮겨온 것 같 매우 안타깝고 슬프다"며 "설악산 국립공원에 케이블카가 생기는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립공원에 케이블카와 산악열차같은 인공물들을 설치하는 것은 근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국가권력이 자연에 휘두른 나쁜 상처들"이라며 " 다른 나라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인공물들을 스스로 제거하는 추세인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가는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정영목 회장은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것은 경제적인 논리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미래를 가지고 있는 후손들에게 그대로의 자연을 물려주는 것이야 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큰 사명이자 책임"이라고 말했다.
텐트를 준비하지 못한 참석자에게는 신청자에 한해 텐트를 대여해 주기도 했다.
서울광장 바로 옆,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위에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2명이 농성중이다. 케이블카반대 문화재 참석자들이 72일째 고공농성 중인 이들을 향해 "비정규직 노동자 승리하세요"라고 외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서울광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국가인권위원회 옥상에 고공농성중인 기아자동차 최정명, 한규엽 노동자가 응원의 목소리에 플래쉬 조명을 밝히며 손을 흔들고 있다.
90살이 훌쩍 넘으신 김영도 선생님. 그는 고상돈이 처음 에베레스트에 올랐던 '77 에베레스터 원정대'의 대장이었다. 많은 행사에서 김영도 선생의 발언을 자주 들었지만, 오늘같이 비장하고 화가 난 듯한 어조와 모습은 처음이다.
"오늘 우리는 설악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였다.
여기 모이지 않은 사람들이 들어야 한다.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놓는다는 것은
설악산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다.
자연과 인간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우리는 현대과학기술 문명의 혜택속에서 살고 있는데
사람들은 현대문명의 헤택을 너무 보고 있어서 벗어날 수 없다.
현대문명의 노예가 되고 있는거나 다름없다.
자연은 한번 파괴되면 다시 찾을 수 없는것이 자연이다.
우리가 사는데 현대문병을 버리겠냐 자연을 버리겠냐
문명없이는 살아도 자연 없이는 못 산다.
이것은 천하의 진리다."
고령의 산악인 김영도 선생님. 비장한 모습으로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세워서는 안된다고 발언하고 있다.
빌딩숲 가운데 넓은 잔디밭에서의 하룻밤, 자동차들의 소음으로 다소 시끄럽긴 해도 특이한 경험이다.
"지금 우리가 설악산 케이블카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멸종위기 산양보호와 200년이 넘는 거목들이 있기 때문이다. 국립공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이며 많은 동식물이 서식하는곳이다. 국립공원에서는 하지말라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 그리고 국민들 대다수는 그것을 지킨다. 왜냐? 국립공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구는 자기들 마당인양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호텔지어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한다. 이런 작태를 용납할 수 있는가. "국립공원을 사랑하는 시민모임 지성희 사무처장의 이야기다.
최근 보면 케이블카 설치의 경제성을 이야기하는 기사들이 많이 눈에 띤다. 지 사무처장은 이에 대해서도 "경제성 보고서도 조작되고 부풀려진 경우가 많다. 짜맞추어 경제성 있는 보고서를 만드는 것이 경제성 분석인 것 같다. 실제 경제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이 맞는 일인가? 경제성 운운하는 것은 대단히 우스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설악산 국립공원은 천연기념물 127호, 멸종위기 1급 산양의 서식처이자 80%가 자연보전지역, iucn(세계자연보전연맹)이 인증한 엄중히 보존해야할 카테고리2,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전지역"이라며 "더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 케이블카가 들어오는 것은 절대 안된다."라고 강조했다.
뒤이어 연단에 올라온 환경운동연합 염형철 사무총장은 "초파리는 썩는 냄새가 나기 시작할 때 쯤 고기에 알을 낳기 시작하는데, 한마리가 낳기 시작하면 동시에 수많은 초파리가 알을 낳으며 난장판이 되고 만다"며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들어선다는 것은 지리산에, 신불산에, 통영에, 거제에, 또 다른 케이블카가 들어서고 국립공원 꼭대기에 식당이, 호텔이 들어선다는 뜻이다. 4대강에서 시작한 삽질이 이제 산을 거쳐서 온국토로 내려오게 된다는 뜻이다."라며 케이블카 설치 반대 운동의 의미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국립공원을 허물기 위해서 저들은 환경부를 자기 부정시키고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을 사기치는 기관으로 전락시켰다"며 "지금 우리는 외나무 다리에서 싸우고 있다. 우리가 한발 물러선다는 것은 한뼘의 땅을 빼앗기는것이 아니라 낭떠러지로 곧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가는길에는 국민들이 있고, 상식이 있다.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바로 환경이고 생명"이라고 일갈했다.
환경운동연합 등 단체들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조사 촉구와 국민의 뜻을 알리기위해 일간신문 전면에 광고를 실을 계획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5천명의 후원자를 모을 계획이라고 한다.
산을 매주 다니고 특히 설악산을 계절별로 한번씩 가는 설악산을 아끼고 사랑하고 설악산이 어떻게 될까봐 걱정되서 나왔다고 하는 '알파인 코러스' 자연이 잘 보전되길 바라며 '설악가'와 '즐거운산행길'을 부른후 공식 행사를 마쳤다.
산양이 사는 설악산을 위해 동물보호단체 '케어'회원들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산악인 정광식씨의 알파인 텐트
7시에 시작된 문화재는 10시가 훌쩍 넘어서야 공식행사를 마쳤다.
밤늦게까지 박그림대표의 설악산 이야기와, 노래공연이 계속된다.
기금마련을 위해 산양손수건도 판매한다.
간이 커피숍도 들어섰다.
수문출판사 김수용 사장님도 케이블카 반대에 동참하셨다.
행사가 끝나고 기념촬영하는 고대산악회 회원들
전국산악인의모임과 대학산악연맹 회원들도 케이블카 반대를 외치며 기념촬영하고 있다.
대한산악연맹 김재봉 전무이사가 행사장을 방문했다.
공식행사가 끝나고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노래도 부르면서 1박2일 '산양과의 동침' 행사가 여름 밤 서울광장에서 밤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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