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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와 사도세자 그리고 창경궁

국내여행/서울 by 심심한사람 2016.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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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와 사도세자, 비운의 궁궐 창경궁

창경궁은 한때 일제에 의해 동물원으로 전락했던 치욕의 궁궐입니다. 경복궁,창덕궁에 이어 1418년 세종에 의해 지어진 후 끊임 없이 크고 작은 화재에 소실과 복원이 되풀이 되었던 조선의 궁궐 가운데 가장 파란만장한 세월을 지닌 궁궐이기도 합니다. 작은 전각 하나하나에도 수많은 사연들이 있지만 특히 창경궁 문정전 앞뜰은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굶겨 죽인 비극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왕과 세자이기 전에 아버지와 아들인 영조와 사도세자, 조선왕조 500년을 통털어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가 아닐까요?   

 

 

창경궁 수난사

 


선조25년( 1592년) 임진왜란으로 창건당시의 전각들이 모두 불타고 광해군8년( 1616년)에 재건축 되었습니다. 순조30년(1830년)에 또 큰불이나서 많은 궁궐들이 다시불타 버렸던것을 순조34년(1834년)에다시지었읍니다. 창경궁의 명정전은 광해군때 중건된 이래 원형대로 보존되어 조선왕궁의 정전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국보 제226호로 지정되었읍니다. 

그러나 순종즉위후 창경궁은 일제에 의하여 크게 훼손되어 결국 1909년  순종3년이 되는해에 일제는 궁안의 전각들을 모두 헐어버리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개설하고 한일합병후 1911년에는 창경궁을 창경원이라고 이름을 고치고 민족정기와 왕실의 권위를 떨어뜨리기 위해 창경궁과 종묘를 잇는 맥을 절단해 도로를 내고 궁안에는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벚꽃을 수천그루 심고 1924년부터 밤 벗꽃놀이를 시작했습니다. 

광복 이후에도 오랫동안 관광시설로 이용되다가 1980년대에 정부에서 창경궁 복원계획을 세워 1983년 12월30일에는 원래의 명칭인 창경궁으로 환원하고 1984년부터 1986년 8월까지 동물원과 식물원시설 및 일본식 건물을 철거하고 문정전등을 복원하였으며 벚꽃나무도 소나무, 느티나무,단풍나무등으로 바꾸고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읍니다.

 ▲2011년 일제가 끊어버린 창경궁과 종묘를 연결하는 복원공사가  시작됐습니다. 창경궁과 종묘 사이의 율곡로를 지하화 하고 그 위에 고궁 녹지를 조성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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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에서 종묘 사이를 연결했던 일본식 콘크리트 다리가 복원공사로 해체되고 일부만 남았습니다. 

 

창경궁은 수도 없이 불타고 다시 세워지기를 반복했으며 일제가 동물을 키우고 궁궐 한가운데로 길을 내는 등의 온갖 잔혹사를 겪은 곳 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잔혹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지 창경궁은 궁궐로서 독립적인 규모를 갖추기는 했으나 왕이 기거하면서 정사를 보는 궁궐로는 사용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창덕궁 뒷문을 통해 창경궁으로 들어가니 요상하게 생긴 석탑이 눈에 보입니다. 창경궁 팔각칠층석탑으로 보물 1119호라고 합니다. 이왕가 박물관에 전시하려고 중국에서 구입한 탑이라고 합니다. 

 

 창경궁의 연못인 춘당지입니다. 천연기념물인 원앙새들이 모여 있는데요, 사람들이 먹이를 주고 있어서 이곳에 눌러 사는 원앙들입니다. 

 

 대온실입니다. 1909년 완공된 식물원입니다. 

 

 대온실 앞에 기이한 형상의 소나무가 있습니다. 침엽수인 소나무가 활엽수인냥 가지가 뻗었습니다.  

 

몇년전에는 없었던 자생식물학습장이 생겼습니다. 우리나라의 산과 들에서 자라는 식용,약용,관상용 식물이 200여종이나 심어져 있다고 하니 올해 봄에는 꼭 와봐야 겠습니다. 

 


비정한 아버지 영조, 비운의 아들 사도세자 

 

 창경궁의 법전인 명정전의 정문, 명정문입니다. 창경궁은 원래 고려시대부터 남경이궁의 터로 세종이 즉위하면서 살아계신 아버지 태종을 모시기 위해 창덕궁 오른쪽에 수강궁을 짓고 이어하시게 하면서 궁궐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성종 때에는 왕후들을 모시기 위해 수강궁터에 이궁을 짓기 시작하여 창경궁이라 했습니다. 

 

 명정전에서 명정문과 홍화문쪽으로 본 서울대병원의 모습, 한국전쟁 당시 창경궁 앞은 후퇴하는 인민군에 의해 살해된 시체들이 산더미 같이 쌓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니 창경궁은 좋은 자리는 아닌가 봅니다. 

 

품계석 하나 하나를 건너가며 한발 한발 왕에게 다가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치열했겠죠? 

 

 창경궁은 왕비와 대비를 위해 지어진 만큼 기존 궁궐의 구조와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특히 영정조때 많은 이야기가 있는 궁인데요,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죽은 장소이기도 하고요. 80세 넘게 살았던 영조가 이곳 명정전에서 팔순잔치를 벌인곳이기도 합니다.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아버지를 생각하고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위해 지은 자경전도 창경궁에 있습니다. 

 

명정전은 현재 남아 있는 조선시대 궁궐 전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1616년(광해군 8년)에 복원한 이후 지금까지 온전하게 보존되고 있습니다. 

 

창경궁은 돌아가신 왕의 부인들인 대비나 대왕대비들의 거처로 알려져 있는데요, 다른 궁궐과 마찬가지로 법전인 명정전과 편전인 문정전 등이 있기 때문에 창덕궁이나 덕수궁 같은 이궁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하네요. 

 

우하한 곡선과 곧게 뻗은 직선, 은은한 나무 본연의 색과 아름다운 자연을 닮은 색, 우리나라 궁궐만큼 아름다운 건축물은 없는것 같습니다.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입니다. 차도를 사이에 두고 근심이 많은 사람들이 오는 서울대병원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창경궁이 다른 궁궐에 비해 더 많이 낡아 보인다는 생각이 남습니다. 사람의 체온이 떠난지도 백년이 됐으니 더 빨리 갈라지고 더 많이 무너지는거야 당연하겠지만 다른 궁에 비해 더 낡아 보이는것은 전각 하나하나에 담긴 아픈 사연들이 더 많아서 인건 아닌가 싶습니다.    

 

창경궁 주차장 TIP 

창경궁 주차장은 기본 두시간에 2천원, 추가 30분에 천원입니다. 그런데 주차 대수가 몇대 되지 않습니다. 그 옆으로 국립서울과학관 주차장도 있습니다. 기본 두시간에 2천원, 추가 30분에 500원입니다. 그리고 주말에 한해 성균관대학교 입구에서 창경궁로를 따라 원남동 사거리까지 주차가 허용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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