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와 죽은자가 만나는 곳, 종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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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500년, 그리고 종묘

종묘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의 역대 임금의 신위를 모신 곳 입니다. 종묘(廟)의 묘()는 무덤이 아닌(사당'')입니다. 보물인 정전은 종묘의 중심 건물로 영녕전과 구분하며 태묘라 부르기도 합니다. 정전은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4대조(목조,익조, 도조, 환조)의 신위를 모셨으나, 그 이후 당시 재위했던 왕의 4대조(고조, 증조, 조부,부)와 조선시대 역대 왕 가운데 공덕이 있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곳이 됐습니다.  

 

이 사진은 여러장의 사진을 한장으로 합쳐주는 포토샵의 포토머지를 이용해서 만든 파노라마 사진입니다. 총 6장의 사진을 이어붙인것인데요, 자세히 보면 지붕의 수평이 정확히 맞지 않는 단점이 있습니다. 포토머지는 풍경사진에 적합한 기능인것 같습니다.

 

정전은 서쪽 제1실에서부터 열아홉분의 왕과 왕비의 신주를 각 칸을 1실로 해서 모두 19개의 방에 모시고 있습니다. 정전은 칸마다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은 단순한 구조인데요, 19칸이 옆으로 길게 이이져 우리나라 단일 건물로는 가장 긴 건물이라고 합니다. 홑처마에 지붕은 사람인()자 모양의 맞배지붕 이며, 기둥은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배흘림 형태의 둥근 기둥, 정남쪽에 3칸의 정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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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로 떠난 조선왕조 500년 역사기행
 

 도심속 숲의 역할을 하던 곳이지만 겨울의 종묘는 삭막함 만이 감돌고 있습니다.

 

세운상가 맞은편에서 종묘로 들어가는 입구 주변은 공사가 한창입니다. 재정비를 한다고 하는데 장기두는 할아버지와 삼삼오오 모여 옛날이야기 하시던 할아버지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종묘는 다른 궁궐과 달리 토요일 자유관람을 제외하고는 시간관람제를 하고 있습니다. 1회 관람인원은 최대300명이며, 시간은 50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사전 예약은 종묘 홈페이지에서 받고 있습니다. 평일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현장예약이 가능한데 주말이나 공휴일은 사전예약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리고 한국어 외에도 영어,중국어,일본어 해설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관람을 하고 싶다면 토요일 방문하면 좋겠죠?

 

 시간이 되면 문화해설자를 따라 이동하게 됩니다. 종묘에 대한 전체적인 해설과 전각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재미있게 합니다. 

 

종묘에 들어가면 박석이 깔린 길이 세개로 나누어져 있는데요, 이 중에 가운데 길은 신도, 즉 영혼이 지나다니는 길이고 나머지 양쪽이 왕과 세자가 다니는 길이라고 합니다.

 

왕이 제례를 준비하는 어제실입니다. 왕이나 왕비가 승하하면 궁궐에서 삼년상을 치른 후에 그 신주를 종묘로 옮겨 모십니다. 

 

왕과 세자가 제례를 준비하던 재궁입니다.  

 

이곳은 제수와 음식을 준비하던 전사청입니다. 

 


 

101미터에 담긴 500년의 이야기 

이곳 종묘는 신전이기도 합니다. 길이가 무려 101미터에 조선 500년의 역사가 잠들어 있습니다. 

  

단청하나 없이 줄서 있는 붉은 기둥들 사이로 500년 조선왕조의 긴 시간이 잠들어 있습니다.  

 

1실부터 19실까지 정전 신위 봉안도 입니다. 

 

정전은 국보 제227호 인데요, 지금의 모습이 한번에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조선의 태조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고 바로 짓기 시작해서 1395년 경복궁보다 먼저 종묘를 완공했습니다. 그 후 왕조가 이어짐에 따라 봉안해야할 신위가 늘어나고 이에 몇 차례 증축이 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정전은 임진왜란때 불타서 다시 지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정전의 문이 열리는 것은 1년에 한번 제향의식이 있는 날 뿐입니다.  신주를 모신 신실은 정전 건물 하나를 함께 쓰면서 칸을 막아 공간을 구분했는데요, 신실 가장 깊숙한 곳에는 역대 조선의 왕과 왕비의 혼이 담긴 신주가 모셔져 있고 왕과 왕비들은 마치 한 방을 쓰듯 신실 하나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전에는 총 19칸,49위의 신주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곳 정전에는 신주가 없는 왕이 두 분이 있습니다. 연산군과 광해군인데요, 왕을 지냈으나 왕으로서 문제가 많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종묘에 신주를 모시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저는 조선에 폐망의 기운이 시작된 사건이 광해군을 폐위시킨 인조반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니 지금와서 뭐라고 하겟습니까...  

 

 종묘의 모든 건물은 장식과 기교를 배제하고 단순하고 엄숙한 분위기입니다. 단순함 속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엄숙함 속에서 왕조의 신성한 권위를 엿 볼 수 있습니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제례는 국가의 가장 큰 제사로 정전에서는 1년에 5번, 영녕전에서는 1년에 2번이 열렸으며 음악,노래,춤이 일체화한 제례악에 맞춰 왕이 친히 주관했습니다. 현재는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종묘 제례를 하고 있는데요, 2016년에는 5월 1일이 종묘제례가 열리는 날입니다.   

 

영녕전은 보물 제821호 입니다. 정전의 신위를 옮겨 모시기 위해 1421년 새로 지은 별묘로 왕가의 조상과 자손이 함께 길이 평안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시설과 공간형식은 정전과 유사하지만 규모가 작습니다. 원래 6칸 이었으나 조금씩 좌우의 협실을 늘려 지금은 신실 16칸에 신위 34위를 모셨는데요 좌우 협실보다 지붕이 높은 가운데 4칸은 태조의 4대조를 모신곳입니다. 

 

조선의 역사를 보려면 여러 궁궐을 가보는것도 좋지만 역대 왕의 신위가 모셔져 있는 '종묘'는 꼭 빠트리지 말고 가봐야 할 곳입니다. 500년 조선의 흥망성쇄가 모두 담겨져 있는 곳입니다.

 

▲주차TIP-종묘 주차장은 공사가 한창인 종묘공원 지하에 공영주차장이 있습니다. 5분당 400원으로 저렴하며 장애인이나 국가유공자 다둥이자녀 할인도 됩니다. 현금은 안되고 카드결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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