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표가 매진이어서 헛탕치고, 다음날 사전 예매 후 힘들게 관람했던 박수근 전시 입니다. 3.1일 까지 하는 전시여서 이번주말이 마지막 입니다. 어쩔수 없이 이틀 연속으로 덕수궁을 와야 했습니다.
박수근 전시는 평일 하루2000명, 주말은 3000명으로 인원제한이 있어서 주말에는 사전 예매를 하지 않으면 관람이 불가능하더군요. 이제부터 모든 공연전시는 "필히 예매를 해야 되겠다"라는 큰 교훈을 얻은 셈 입니다.
박수근 나목 전시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전시는 성인 2000원으로 무척이나 저렴합니다. 또한 24세 미만 65세 이상은 무료관람 이구요. 얼마전 입장료 2만원에 작품수도 얼마되지 않고 사진도 못 찍게한 '달리' 전시회와는 너무 비교가 되더군요. 그렇다고 박수근 전시가 해외 유명 아티스트들의 전시에 비해 규모면에서도 절대 뒤지지도 않습니다. 미술 전시가 작가의 작품 가격을 기준으로 결정되는건지는 몰라도 박수근 전시는 근래에 봤던 전시중에서 가장 만족했던 혜자 전시회 였습니다.
전시는 덕수궁 안에 있는 '이왕가미술관'이었던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에서 열렸습니다. 총 4개의 전시실에서 박수근이 19세에 그린 수채화부터 죽기전인 51세까지 그린 유화까지 그의 전 생애의 작품과 잡지등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고. 네 개의 전시실은 박수근의 부인 김복순 여사, 소설가 박완서, 아들 박성남, 박수근의 진가를 알아본 컬렉터와 비평가의 시선을 따라 구성됐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그랬듯 박수근도 일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화가였습니다. 그가 죽고 나서 10년이 지나서야 작품들이 팔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그의 작품은 두달 정도의 봉급이면 살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박수근이 활동할 당시에는 해외 미술 관련 정보는 모두 일본에서 건너왔다고 합니다. 박수근이 참고했던 일본미술 잡지들 입니다.
스케치들도 있고요. 지금은 이 스케치 한장에 2천만원에 팔린다고 합니다.
나무와 두여인
박수근의 빨래터는 당시 한국에 체류한 존 닉스라는 미국 사람이 박수근에게 물감등의 미술재료를 구해다 주고 선물로 받은 5개의 작품 중 하나 입니다. 그랬던 작품들이 2005년 존 닉스가 사망한 뒤,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그의 부인이 박수근의 '빨래터'를 경매에 내 놓게 되는데, 이 작품이 당시 한국경매사상 최고액인 45억 2천만원이라는 가격에 낙찰됐습니다.
박수근의 고객들은 한국사람들 보다 미대사관 직원 부인들과 반도화랑의 주인 실리아 짐머맨과 마가렛 밀러 같은 미국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이때 미국으로 건너간 박수근의 작품은 200여점 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들은 수십년 후, 한국에서 수십억을 호가하는 소문을 듣자 거의 한국 경매장으로 되돌아왔다고 합니다.
박수근은 가난 때문에 미술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다고 합니다. 병원에 갈 수 없어서 2명의 아들이 죽었고, 자신도 돈이 없어 백내장 수술을 미루다 한쪽 눈을 실명한 후 간경화가 악화돼 죽었습니다. 당시 50불 60불, 또는 물감과 캔버스로 교환했던 그의 그림이 지금 수십억을 호가 하는것을 안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살아 생전 단 2점 밖에 팔지 못하고 권총으로 자살한 고흐의 초상이 그의 그림에서 디졸브 되는것 같습니다.
예술가의 생이 비참할수록 작품 가격은 더 비싸진다고 합니다. 누구를 위한 것 일까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관람후 덕수궁도 한바퀴 돌아 봅니다.
통유리를 뚫고 들어온 햇살이 철구조물을 환하게 드러내 줍니다.
사라짐으로 더 좋아진 것 중 한 곳입니다.
대통령 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강아지들은 호기심이 많은지 항상 차창밖을 내다 봅니다.
노숙인들의 메카는 서울역인데 이분은 그곳에서도 밀려나셨나 봅니다.
전세계인들의 공분을 싸고 있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에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를 규탄하는 행진을 합니다.
이 골목 빼고는 전부 재건축되어 빌딩이 들어섰습니다. 나무 기둥의 적산가옥 광화문집, 언제까지 볼 수 있을런지... 오늘 전시의 마지막은 세종문화회관 뒤 '광화문집'에서 추억을 먹으며 끝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