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박물관 신안유물전, 보물선의 수장고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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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박물관 신안유물전

어제는 용산 국립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이라는 신안 유물특별전을 보고 왔습니다.

어릴때 누구나 한번쯤은 보물지도 따라 보물선을 찾아가는 주인공을 꿈 꿔보기도 했었죠, 지금도 디스커버리 채널을 보면 수백년전 난파된 보물선을 찾는 사람들이 종종 나오더군요. 아이 핑계를 됐지만 사실은 내가 더 보고 싶었던 전시회 였습니다.   

1323년 중국에서 수많은 보물을 싣고 일본으로 향하던 중국 상선이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했습니다. 길이는 34미터 무게는 2백톤으로 당시대 최대의 무역선이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652년의 세월이 흐른 1975년 물고기를 잡던 한 어부의 그물에 청자 몇점이 올라오면서 시작된 해저 발굴은 1984년까지 11차례에 걸쳐 이뤄졌습니다.

신안 앞바다에 침물한 보물선에서는 2만 4천 여점의 도자기와 800만개의 동전 28톤 등 어마어마한 양의 유물들이 나왔습니다. 가치를 따지면 1조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지금 까지 신안 보물선에서 찾은 유물 가운데 1천여점 정도만 공개됐는데 '신안 보물선 발견 40주년을 맞아 어제(7월26일) 부터 일반인에게 그 수장고를 완전히 열었습니다. 

 


 

신안유물전을 보고 사진을 찍어 올리면 상품을 주는 이벤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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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박물관 특별전은 입장료를 내야 합니다. 신안 유물전은 성인 5천원 입니다.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

모란넝쿨무늬 큰 꽃병입니다. 1975년 한 어부가 신안 중도 앞바다에서 끌어 올린 그물에 6점의 도자기가 올라 왔는데요, 이 꽃병이 당시 6점의 도자기중 1976년 1월 신안군청에 최초로 신고된 도자기 입니다.  신안 보물선의 존재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계기가 된 청자 꽃병입니다. 

보물섬에서 발굴된 이 흑도자기는 경기도 가평에서 흑도자기를 굽는 '가평요'의 김시영 선생님의 작품과 닮았습니다. 흑도자기 '흑유'는 화려한 청자와 백자가 나오면서 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고려청자 학무늬 배개

전시관에는 중국사람들도 꽤 여럿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중국인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유물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 보다도 중국 사람들이 먼저 봐야 할 전시가 아닐까 합니다. 

무게를 잴 때 사용하는 저울의 청동 추로 몸체에는 '경원로'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신안 해저선의 출항지가 경원항으로 지금의 닝보임을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단서 입니다.

글자가 쓰여진 화물 꼬리표입니다. 출항 연도와 화물 주인, 사원이름, 교역물자의 종류와 수량 등을 알 수 있는 인식표 입니다.

은괴라고 합니다.

고려 12세기의 솥모양의 향로(왼쪽)와 , 기원전 12~11세기 상나라의 고기 삶는 청동 솥입니다. 그러고 보니 중국 문자박물관에서도 본 솥이네요. 

수장고에 들어온 듯한 기분입니다.

지금은 '장미목'이라고도 부르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자단목'이라고 하는 멸종위기의 나무 입니다. 중국 황실에서 가구용으로 쓰는 목재인데 일본으로 가는 상선에서도 많은 자단목이 함께 발굴됐습니다. 

800만개의 동전 28톤이 배에 실려 있었다고 합니다.

3m는 됨직한 보물선의 닻입니다.

괴짝안에서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최초 신안 해저에 있던 원형을 그대로 살려서 전시 해 놓았습니다.

숟가락 거울 화병 향로 같은 각종 청동기 제품들입니다.

은괴인가 하고 봤더니 주석입니다. 주석은 구리와 섞어 청동을 만드는 재료입니다.

홀로그램으로 유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고있습니다.


 

 

신안 보물선에 실려 있던 백자 접시 입니다. 분홍빛 나뭇잎 두개가 그려져 있는 접시에는

(流水河太急)흐르는 물은 어찌 저리도 급한고

(深宮盡日閑)깊은 궁궐은 종일토록 한가한데

이 시구는 당나라 때의 한 궁녀가 지은 시의 전반부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그 후반부도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殷勤謝紅葉)은근한 마음 붉은 잎에 실어보내니

(好去倒人間)인간 세상으로 쉬이 흘러가기를

이 후반부의 싯귀가 쓰여진 또 다른 접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 아름다운 접시는 배에 탔던 사람들이 겪었을 급한 파도를 연상케 하고 그들의 애틋한 마음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편지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배의 뒷쪽, 선상생활을 하는 공간입니다.

선원들의 숙소가 있고 식사를 했던 곳으로 각종 조리 기구와 술병, 찻잔 장기와 바둑, 주사위 같은 유물도 함께 발견됐습니다.  

원나라 13세기 후반~14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는 백지흑화 당초문 소병으로 넝쿨무늬가 아름다운 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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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해저선에서 발굴한 것들을 보면 중국에서 일본귀족들에게 팔려가는 고급 도자기를 비롯한 값비싼 상품들이 가득 실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무역선은 항해 도중 깊이 20m가 넘는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배에 타고 있던 선원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값비싼 보물과 함께 수장됐을까요? 아니면 무사히 탈출 했을까요? 그리고 엄청난 손해를 입었을 선주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요?

신안해저선은 수많은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이 서려 있는 침몰선이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보물선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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