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그리고 길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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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가 만든 길상사

길상사가 있는 성북구는 서울에서도 볼거리가 참 많은 곳 입니다. 내사산 성곽길이 이어져 서울 4대문을 훤 하게 내려다 볼 수 도 있고, 북악산길로 이름이 바뀐 '북악 스카이웨'가 관통하는 곳이어서 주말이면 거친숨을 쉬며 업힐 하는 라이더 들과 팔각정으로 가는 차량 행렬이 줄을 잇는 길목이기도 합니다. 몇 년 전에는 북악산길 옆으로 나무데크를 깔아 놔 걸어서도 갈 수 있게 했습니다. 도심속에서 숲속을 느낄 수 있는 꽤 괜찮은 걷기 코스입니다. 

대한민국 부촌 1번지, 성북동

다시 길상사로 돌아와서 길상사는 성북동의 으리으리한 저택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절 입니다. 북악산 중턱에 자리잡은 저택들의 뿌리를 따라가면 대부분 조선시대 고관대작들이 살았던 집들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라고 합니다. 기품있고 뼈대 있는 양반가문, 그것도 지금의 장관 정도의 위세높은 대감들이 살던 동네인거죠.  그래서인지 강남의 부자들이 돈을 싸 들고 와도 이곳에는 이사 올 수 없다고 하더군요.  

9월이면 천재시인 백석과 김영한의 이루지 못한 슬픈 사랑 처럼 살아서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슬픈꽃, 꽃무릇이 길상사 경내에 붉게 피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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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시인, 백석의 연인 김영한 

오늘의 길상사를 있게 한 김영한은 어린 나이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진향이라는 기생이 되었다고 합니다. 노래와 춤, 글 쏨씨가 뛰어나 일본으로 유학까지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영한의 일본 유학에 도움을 주었던 신윤국이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되자, 그의 면회를 위해 귀국했던 김영한은 운명의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그가 바로 시인 백석 입니다. 

그러나 기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둘의 관계는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합니다. 백석은 부모의 강권으로 다른 여인과 결혼을 하고 해방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만주로 떠나게 되어 결국 김영한과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됩니다. 

백석은 김영한을 그리워하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를 지어 지금까지 애절한 사랑의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존고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옹앙옹앙 울을 것이다

 

천억의 대원각을 시주, 무소유를 실천한 길상화 김영한 

백석과 이별한 김영한은 1955년 성북동 배밭골이었던 지금의 길상사 부지를 구입해 1970년대 까지 대원각이라는 고급요정을 운영했습니다. 그리고 1987년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7천평의 대원각 터와 40여동의 건물을 절로 만들어 주기를 청하며 법정스님에게 시주했다고 합니다.

1997년 요정 대원각은 법정스님에 의해 길상사로 창건됐고, 김영한은 '길상화'라는 불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길상화는 "나 죽으면 화장해서 눈이 많이 내리는 날, 길상헌 뒤 뜰에 뿌려주시오"라는 유언을 남기고 1999년 돌아가셨는데, 길상화 김영한의 유골이 뿌려진 그 자리에 공덕비가 세워졌습니다. 

대웅전이 따로 없는 길상사의 본전인 극락전 입니다. 

길상사의 범종각, 여인들의 웃음 소리가 나던 요정에 아름다운 종소리가 울리길 소원했던 길상화의 바람이 이루어 졌습니다.   

보리수 나무 아래 지그시 눈 감은 동자승의 미소가 좋아 한참 들여다 봅니다. 

보리수 나무를 닮은 듯 하지만, 보리수 나무는 아니고 중국에서 들여온 능수회화나무입니다.

극락전 앞마당에 만개한 해국입니다. 보통은 바닷가에서 자생하는 국화가 식물입니다. 

절구통에는 앙증맞은 수련도 꽃을 피웠습니다. 수련의 '수'는 잠잘 '수'입니다. 날이 흐리거나 밤이되면 꽃잎을 접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길상사의 본전인 극락전 입니다. 가운데 극락전의 주불인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극락전으로 들어가 두툼한 방석을 꺼냈습니다. 세분의 부처님께 삼배씩 올립니다.

법당은 누구나 들어와서 참배 할 수 있습니다.  

아들녀석은 법당안에 들어오지도 않고 법당 문턱에 턱을 괴고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합니다.  

법당을 나서 다시 길상사를 돌아 봅니다. 빨간꽃잎에 분홍띄가 있는 꽃무릇이 피었습니다. 이루어지지 못한 애절한 사랑의 김영한과 시인 백석이 떠 오릅니다. 

경내 곳곳에 특이한 작품들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손으로 스르륵 건들면 소리가 울립니다. 그다지 맑은 소리는 아니어서 실망입니다.

과거급제한 이들이 쓰던 어사화를 닮은 누린내풀 입니다. 다른 이름으로 노린재풀, 구렁내풀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모두 좋지 않은 냄새와 관계 있는 이름입니다. 이름처럼 이 풀을 만지면 누릿하고 비릿한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빨간 꽃무릇이 아름답게 핀 사진이 화단 가운데 전시되어 있습니다.

가느다란 줄기에 이삭같은 꽃이 달렸다고 해서 이삭여뀌라고 합니다. 

길상사 꽃무릇의 절정은 9월 초순경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간 날은 거의 지고 느린 몇 송이만 남아 있었습니다. 

한 주만 더 일찍 왔었더라면 빨간 꽃무릇을 볼 수 있었는데 안타깝습니다.

길상화 김영한은 길상사에서 생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눈을 감게 되었고 그렇게 술과 여자, 돈이 얽혀 가장 세속적이었던 대원각은 아름답고 고즈넉한 사찰로 탄생하게 됐습니다.  그의 유골이 뿌려진 이곳에 길상화의 공덕비가 세워졌고 그 위에 길상화를 모신 사당이 있습니다.  

극락전 뒤로 한바퀴 돌아 다시 극락전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범종각 오른쪽의 건물에서 오래전 법정스님의 설법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길상사에서 꼭 봐야 할 마리아를 닮은 관세음보살 상, 법정스님께서 종교간 화합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천주교 신자였던 조각가 최종태씨에게 의뢰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10월 중순, 지리산 실상사로 4박5일 들살이를 떠나는 우리 아이

"이 모습을 보는 이 마다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의 원력으로 이 세상 온갖 고통과 재난에서 벗어나 지이다. 나무관세음보살"

길상사 템플스테이는 매주 토요일 열린다고 합니다. 초롱초롱 별이 떠 있는 새벽에 부처님께 예불 드리고 바루공양하며 김영한과 법정스님이 실천하신 무소유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길상사는 꽤 여러번 갔었는데 석탑은 처음 봤습니다. 이 탑은 1600~165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며 영안모자 백성학회장이 법정스님과 길상화보살님의 고귀한 뜻을 기리는 의미에서 기증하셨다고 합니다. 탑의 이름이 '길상7층보탑'이라고 합니다.

여기 침묵의 그늘에서 그대를 맑히라

이 부드러운 바람결에 그대 향기를 실으라

그대 아름다운 강물로 흐르라

오 그대 안 저불멸의 달을 보라

 

길상사를 한바퀴 돌아 저무는 꽃무릇과 풀꽃들을 구경하고 길상화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법정스님의 조용하면서 낭랑하던 설법도 생각해 봅니다. 꽃무릇이 화사하게 피는날 다시 오리라 다짐하며 길상사를 나 섭니다.

길상사 대중교통

4호선 한성대 입구역 6번출구에서 행단보도를 건너 서울 3대 빵집인 나폴레옹과자점 앞에서 2번 마을 버스를 타고 8정거장 지나면 길상사 바로 입구에 도착합니다.

길상사로 가는 2번 버스 노선도 입니다.

 

 

 

도심속 고요함 길상사

도심속에서 느끼는 고요함, 성북동 길상사 성북동을 자주 갈 일은 없지만 한번씩 갈 일이 있으면 꼭 길상사에 들리곤 합니다. 조용하고 한가로운 분위기속 저택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길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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