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따라 걷는 과거로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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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따라 걷는 과거로의 여행

봄,여름,가을을 빼 놓지 않고 주말이면 주차장 가득 관광버스들이 들어차는 문경새재,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100선 중 첫번째에 뽑힐 만큼 자연과 역사가 어울어진 곳 입니다. 사실 저는 문경새재를 여러번 와 봤지만, 지금처럼 엄동설한의 문경새재는 처음입니다. 그러고 보니 문경새재의 겨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하더군요.

문경새재는 옛날부터 영남 사람들이 다니던 길 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지도를 놓고 보면 지리산에서 설악산 백두산까지 백두대간이라 부르는 높은 산줄기가 뻗어 있습니다. 이 백두대간은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려는 사람들에게는 큰 장애물이나 마찬가지였는데요, 산이 깊으면 골이 깊은법이라고 이렇게 높디높은 백두대간 등줄기에도 비교적 낮은 고개들이 있었습니다. 

추풍령과 죽령,그리고 문경새재라고 부르는 '새재'가 영남에서 한양으로 넘어가는 3개의 길이었던거죠. 그런데 조선시대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가기 위해서는 꼭 문경새재를 통해 한양으로 갔다고 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징크스라고 할까요? 추풍령을 넘어가면 추풍낙옆처럼 떨어진다고 해서 가면 안되고, 죽령은 죽죽 미끌어진다고 해서 안되서 마지막 남은 조령산과 주흘산 사이의  '새재'를 통해 과거를 보러 갔다고 합니다. 좀 우습긴 하지만 조선시대 입신양명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과거를 통해야 하니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리고 임진왜란때 천혜의 요새나 다름없던 새재(조령)을 비워둔 신립장군의 잘못된 결단이 두고 두고 아쉬운 곳이기도 합니다. 충주 탄금대가 아닌 조령에 진을 치고 방어를 했다면 우리의 역사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그 옛날 괴나리봇짐과 미투리 몇 짝을 등짝에 딱 메고 떠났던 선비들의 과거길을 한번 따라 나서 볼까요? 

주차장과 무수히 많은 식당들 그리고 박물관을 지나면 본격적인 문경새재 과거길의 출발을 알리는 큰 돌이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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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제일관인 주흘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관문교입니다. 다리의 네 귀퉁이 마다 석상들이 앉아 있습니다.  

 정면에서 보며 '주흘관'이라는 편액이 뒷쪽에서 보면 '영남제일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이 성문의 오른쪽 산이 주흘산입니다. 그리고 영남에서 한양, 낙동강에서 한강으로 가는 교통의 요충지였던 문경새재의 얼굴인 제1관문입니다. 

새재 입구 옛길박물관에서 주흘관을 지나 오픈세트장까지 운행 하는 전기차 입니다.  

 오픈세트장입니다. 내부에는 경복궁과 6조거리 같은 조선시대 건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전기차 편도 이용료는 성인 1천원, 어린이 5백원 입니다. 전기차를 타고 오는 거리는 어른 걸음으로 15분 700m 거리 입니다.    

오픈 세트장 내부의 모습입니다. 민속촌 같이 조선시대 거리를 재현해 놓았습니다. 

주흘관에서 얼마 가지 않아 길 옆으로 조선시대 관찰사나 순찰사, 현감 등 이곳을 거쳐간 관리들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많은 공덕비의 시작은 관찰사 김연(1655~?)의 비석 부터 시작됩니다.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22살에 진사가 되고 31에 정시문과에 급제했으며 여러 내외직을 거쳐 1704년부터 1706년까지 경상도관찰사로 재임했고 이후 도승지, 예조참판, 호조판서, 형조판서를 역임했다고 하니 탄탄대로의 삶을 살았군요. 

 

관찰사는 지금으로 도지사

도승지는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비서실장

예조참판은 문화· 외교·교육부 차관

호조판서는 기획재정부장관 국세청장 통계청장

형조판서는 법무부장관 

 문경새재는 전 구간이 황톳길이어서 맨발로 걷기에도 좋습니다. 몇몇 구간에는 발바닥 지압을 위해 자갈과 다양한 형태의 요철구간이 있습니다. 

겨우내 매달려 있는 빨간 산수유 열매가 눈에 띕니다. 겨우내 배고픈 산새들의 훌륭한 먹이가 되겠죠. 

맑디 맑은 계곡물이 새재길옆 도랑을 통해 흘러와서 모이는 곳입니다.  

원터에서 3구간까지 휴대전화가 불통이 됐군요. 

출장가는 관리들을 위한 숙소인 '원' 터 입니다.  오늘날 여관으로 600평의 돌담과 주춧돌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복원된 조령원인데 쓰러질듯 위태한 모습입니다. 

경상도 신·구 감사의 교인식이 이루어진 교귀정과 그 앞에 우람하게 서 있는 교귀정 소나무 입니다.    

나무 뿌리가 북쪽으로 뻗고 줄기는 길손들이 쉬어 가도록 남쪽으로 향해 있어 마치 연인이 춤을 추는 듯 새재를 찾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문경새재를 따라 흐르는 새재계곡은 제3관문에서 2관문쪽 중간 즈음의 초점에서 시작됩니다. 초점은 태백의 황지와 소백산 순흥에서 발원한 물길이 상주에서 합류해 낙동강을 이룹니다.  

새재계곡에는 20m의 조곡폭포를 비롯해 용추폭포 등이 있습니다. 

주흘관과 조곡관 사이에 옛 과거길로 빠지는 곳이 나타납니다. 이곳은 넓은 영남대로를 벗어나 숲길을 걷는 호젖한 길 입니다.   

 새재를 따라 흐르는 도랑물이 꽤나 세찹니다.

최초의 한글 비석인 '산불됴심'비  

조곡관 직전에 있는 20미터 높이의 조곡폭포 입니다. 사진촬영 장소이기도 합니다.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제2관문인 주흘관에서 3km를 걸어 오면 제2관문인 조곡관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마지막인 제3관문인 조령관까지는 3.5km 1시간20분을 더 가야 합니다. 

제2관문 부터는 물길이 사라지며 조금씩 경사를 올립니다. 제1관문으로 되돌아 가야 할 분이라면 굳이 3관문까지 가지 않고 제2관문까지만 왕복해도 좋을것 같습니다.   

제1관문에서 제2관문까지는 유모차가 갈 수 있지만, 제3관문까지는 조금씩 경사가 더해져 힘이 들 것 같습니다. 

백두대간 조령산과 주흘산 사이로 난 문경새재길 지도 입니다. 

굽이굽이 약간은 지겨운 제3관문까지 3.5km를 걸으니 영남제3관이 나타납니다.

커다란 전나무가 먼저 눈에 보입니다.  

소나무과인 전나무입니다. 전나무는 송진의 색깔이 희다고 젖나무라고도 부릅니다.  

 한창 성곽 복원공사중인 조령관입니다. 제3관문의 정면에는 조령관, 뒷면에는 제2영남관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습니다.

드디어 7km를 걸어 문경새재 과거길에 도착합니다.  

백두대간 조령  표지석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대간길은 북쪽으로 마패봉과 동암문 부봉삼거리-주흘산갈림길-평천재-탄항산-모래산-하늘재로 연결되며 포암산과 황장산을 거쳐 소백산 태백산으로 계속해서 북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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