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꽃 만개한 순천 선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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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진분홍속 선암사 

엊그제 다녀온 전남 순천 선암사에는 진분홍 배롱나무꽃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봄에는 매화와 벚꽃이 선암사 경내를 둘러싸더니 삼복 더위속에 핀 선암사의 배롱나무꽃이 수행자들의 마음을 어지럽히지나 않을지 염려됩니다. 

태고종의 본산, 선암사

순천 조계산 동쪽에 있는 선암사는 1500년의 역사를 간직한 태고종의 본산으로 우리나라 사찰중 옛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한 곳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본산은 한 종파의 본부가 되는 큰 절로 많은 스님들이 수행하는 중심 도량입니다. 조계종의 본산은 서울에 있는 조계사이며 태고종은 순천의 선암사, 천태종은 단양 구인사로 우리나라 삼대 불교 종파입니다. 

십 년의 기억이 찾은 선암사

지난 29일 고성과 고흥을 둘러본 후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찾은 순천 선암사, 이곳은 10년 전 가을, 조계산 산행을 위해 처음 왔었던 곳입니다. 선암사에서 출발해 조계산 정상을 넘어 송광사까지 걸었던 늦가을의 조계산은 골골이 가득 찬 단풍숲과 억새풀 넉넉한 능선의 기억보다는 빛바랜 단청과 담쟁이 넝굴이 잘 어울리는 흙담길과 야생차밭, 둥그런 구름다리 같은 경건한 사찰의 느낌보다는 사람냄새 묻어 나는 고택에 온 것 같았던 기억들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 십년묵은 기억들 덕에 이번 여행에는 아내와 아이가 동반자가 됐습니다. 가장 쉽게 행복해지는 방법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거라고 하죠. 그다음으로 쉽게 행복해지는 방법이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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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와 선암사 그 사이   

아련했지만 잊혀지지 않던 그 기억을 따라 순천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선암사를 송광사로 혼동해 버린 탓에 커다란 일주문 안으로 줄줄이 늘어선 식당들이 여느 관광지로 들어온 듯 기억 밖의 공간으로 와 버렸습니다. 송광사로 들어가는 입구의 커다란 지도를 보고 난 후에야 선암사를 송광사로 잘 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시 차에 올라타 목적지를 선암사로 재설정합니다. 송광사와 선암사는 조계산의 동·서에 자리 잡고 있는데 산길로는 고작 6킬로지만, 차로는 무려 35킬로를 둘러 가야 하는 인고의 거리입니다.

대중교통을 타고 선암사로 가는 사람들은 순천역에서 출발하는 1번, 16번 버스를 타면 한 시간여 만에 선암사까지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선암사로 가는 길

선암사로 들어가는 마을 입구에는 까만 기와를 얹은 한옥펜션들이 즐비합니다. 오 분여를 더 올라가면 그 길의 끝에 커다란 선암사를 알리는 주차장이 나오고  여기서 새로이 곧게 뻗은 평평한 흙길이 시작됩니다. 오분여를 가면 문화재관람료를 받는 매표소가 나오며 여기서부터 선암사 까지는 1km 거리로 건강한 걸음으로 10~15분 거리 라고 하는데 걸어보니 1km는 더 되는 듯 보이고 이곳저곳 둘러보고 사진도 찍고 하다 보면 30분은 훌쩍 넘기는 것 같습니다. 10~15분은 앞만 보고 직진할 때 걸리는 시간입니다.        

선암사로 가는 길 옆으로 유난히 둥치가 굵은 참나무들이 많이 보입니다. 큰길로 몇 걸음이나 나와 있는 졸참나무 고목입니다. 참나무 6형제 가운데 가장 졸병이지만, 이렇게 사람 다니는 길 가로 나와 앉은걸 보니 용기는 장군감입니다.

노 커플도 젊은 커플도 모두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입니다.

'선교양종대본산'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표석도 있습니다.

첫 번째 나오는 부도전 앞의 배롱나무에 서서

선암사에는 야생차밭이 유명합니다. 그래서인지 야생차 체험관이 있네요.

방학을 맞아 국토종단을 하는 학생들이 무리 지어 내려가고 있습니다.

귀여운 도깨비 장승

 

남도의 보물, 한국의 보물, 승선교

선암사로 가는 길에 계곡을 가로지르는 둥근 구름다리가 두 개가 있습니다. 이곳은 첫 번째 나오는 구름다리인데요, 똑같은 형태의 다리가 두 개나 있는 이유가 뭘까 궁금하던 터에 찾아보니, 옛날에는 다리 오른쪽의 큰길이 없어서 이 다리와 승선교를 건너야만 강선루에 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선암사 최고의 풍경을 뽑으라면 보물 제400호인 승선교의 풍경입니다. 수많은 사진가들의 촬영 포인트이기도 한 이곳은 승선교 돌다리의 반원과 그 아래 계곡물에 비치는 승선교의 반원이 합쳐져 정확히 원이 되는데, 그 원에 강선루의 오롯한 모습을 넣는 것이 촬영 포인트라고 합니다. 광선의 유무와 방향, 계곡의 수량 등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은데 요즘은 강선루에 현수막이 상시적으로 걸려 있어 사진가들의 눈엣 가시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침 해가 없어서 그림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승선교 보물 표지석

신선이 올라갔다는 뜻의 '승선교'입니다. 다리 앞 쪽에 '강선루'라는 신선이 내려온 누각이 있습니다.

승선교를 지나면 나오는 강선루라는 누각입니다. 어릴 때 살던 동네에도 '강선대'라는 사당이 있는 작은 돌산이 있어서 자주 놀러 가곤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강선대는 선녀가 내려왔던 곳이라는 뜻인데 이곳도 선녀가 왔었나 봅니다.

강선대 앞 계곡의 '소'입니다. 혹시 선녀가 내려와 목욕한 곳은 아닐까요?

누리누리한 냄새가 나는 '누리장나무'도 이제 막 꽃잎을 떨구고 까만 씨를 만들려 합니다.  

남쪽은 가뭄으로 계곡이 바싹 말랐다는데 선암사 계곡은 그나마 시원한 물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이거 무슨 냄새야"하고 아이에게 내미니 "오줌냄새"라고 단번에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알았나 신기할 따름입니다. 이 덩굴식물의 이름이 바로 '닭의 오줌냄새가 나는 등모양의 꽃'이라는 '계요등'입니다. 

편백나무숲에서...

한국 전통 연못인 삼인당, 가운데 둥그런 섬과 주변으로 타원형의 연못은 한국전통의 연못이라고 합니다. 어리연이 한창 노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삼인당을 지나면 선암사 일주문까지 오른편으로 차나무 밭이 보입니다.

선암사로 올라가는 100미터의 길은 살짝 경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궁궐이나 행궁에서만 봤던 '하마비'를 사찰에서도 봅니다.

선암사의 소박한 일주문입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백일동안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 (목백일홍나무)가 반갑게 맞이합니다.

일주문 뒤편에는 '고청량산해천사'라는 현판이 있습니다. 보통의 사찰에 있는 일주문과 법종루 사이에  무시무시한 사천왕상과 천왕문이 있어야 하는데 선암사에는 그런 게 없죠, 이유는 조계산 주봉이 장군봉이라서 장군이 절을 지켜준다니 만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템플스테이 체험 하는 아이들이 술래잡기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즐겁고 밝아 보여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선암사 템플스테이 체험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소원 등 달기, 음식을 통해 나를 바로 세우는 성찰을 시간을 갖는 '발우공양' , 차나무처럼 회초리되어 스스로 자신을 경책 하는 '다도'체험,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용기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다짐하는 '예불의식', 육신의 고행을 통해 정신적 자유를 얻으려는 소박한 마음인 '108배', 나를 힘들게 하는 한 알 한 알을 꿰는 '염주 만들기', 편백나무 숲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편백나무숲길 트래킹', 부처님의 발자취를 찾는 '행선', '스님과의 차담', '선체조', '좌선', '만다라 치유명상'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중복과 말복의 중간, 습함과 더움의 절정에 샘물마저도 미지근합니다.  

선암사 대웅전 앞, 두 기의 삼층석탑과 야외 법회에 사용하는 대형 부처님의 그림인 '괘불'을 매다는 돌기둥이 네 개가 있는데 사방에서 부처님을 볼 수 있게 하려고 했는지 각각 방향을 달리 하고 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인 선암사의 중심 법당

경건한 대웅전 안, 빛바랜 단청들 가운데 부처님 위로 용머리 장식이 있습니다. 

선암사 선암매, 대웅전을 지나 차밭으로 가는 길에 있는 종정원 왼편 돌담을 따라 서 있는 350~650년에 이르는 50여 그루의 매화나무를 선암사 '선암매'라고 합니다. 3월 말이 절정이라고 때를 맞춰 와 봄 직 합니다.

여름을 재촉하는 걸까요? 가을을 재촉하는 걸까요? 쬐끄만 담쟁이 잎이 벌써 붉게 물 들었습니다.

스님들 정진수행 중입니다, 사찰에서는 함부로 떠들지 말아야 합니다.

산암사 뒤뜰의 야생차밭이 시작됩니다.

생각보다 꽤 넓은 야생차밭입니다. 10년 전 가을, 이곳의 차 열매를 몇 개 따와 화분에 심었지만 결국 키우지는 못 했습니다.

땅바닥에는 가래도 굴러 다닙니다.

우리 아이는 목이 자꾸 타나 봅니다. 자연을 닮은 샘터가 너무 이쁩니다.

대웅전 옆에 있는 '구시'라는 대형 밥그릇입니다. 2 천인분의 밥을 보관했다고 전해지는데 선암사에는 한 때 승려들이 2천여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구운몽의 저자 '서포 김만중'의 부친인 김익겸의 글씨라고 합니다. '육조고사'라는 중국 선종의 완성자 6조 혜능대사의 법통을 이어받은 오랜 절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목백일홍이라는 이명을 갖고 있는 배롱나무입니다. 붉어서 좋고 오래 봐서 좋습니다.

선암사 뒷간은 시인 정호승의 '선암사'라는 시로 유명하죠.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을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문이 없는 키 낮은 화장실은 앞쪽으로 앉던지 뒤로 앉던지 따로 방향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옛날 논산훈련소의 수류탄 투척 교장에 있던 화장실도 요런 화장실이었는데...   

진하디 진한 배롱나무꽃, 향기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수행 중인 스님들 질끈 눈만 감으면 되니 말입니다. 

고즈넉한 순천 '선암사'는 저의 인생 사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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