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부석사에서 숙박, 그리고 새벽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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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의 백미를 찾아 떠난 여행

부석사는 최고의 목조 건축물이자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무량수전과 의상대사를 사모한 선묘낭자의 애틋한 전설이 있는 사찰 입니다. 뿐만 아니라 올해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선정되기 까지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석사를 찾지만 대부분은 부석사의 백미라고 하는 해넘이를 보지 못합니다. 부석사 무령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서 바라보는 안양루와 소백능선의 해넘이는 우리나라 3대 해넘이에 꼽힌다고 합니다. 

저는 이번에 부석사의 해넘이와 야경, 그리고 새벽 여명의 모습까지 담기 위해 부석사에서 1박을  허락 받았습니다. 부석사는 여느 사찰과 달리 템플스테이같은 프로그램이 없어 일반인들이 사찰에서 묵는 자체가 어렵다고 합니다.  

부석사 새벽예불

부석사에서의 1박2일

오후 늦은 시간, 부석사에 도착합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500미터 남짓 걸어 올라 와야 합니다. 부석사 종무소에 들러 숙박 할 방을 배정 받고 짐을 풀었습니다. 손님들이 묵는 방이 총 세칸인데 제가 묵은 가운댓 방이 가장 큰것 같습니다. 20명은 자도 될 만한 방에 오늘밤은 혼자 입니다. 

미리 문화해설을 예약해 두어 밖으로 나가 해설사님을 만났습니다. 한시간 조금 넘게 부석사를 돌아 보면서 선묘낭자의 전설부터 부석사의 보물과 의도치 않은 신비로움 까지 어디서 쉽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5시가 되어 저녁 공양시간입니다. 넓은 식당안에 저녁공양을 하는 사람은 넷 밖에 없습니다. 호박국에 김치전, 우엉조림과 김치가 전부이지만, 꿀맛이 따로 없습니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부석사의 백미인 해넘이를 보기 위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으로 달려 갔습니다. 하지만 해넘이의 각도가 너무 서북쪽이어서 뒷산에 가려 버립니다. 해가 넘어 간 뒤로도 반시간 이나 붉은 하늘이 사위를 물 들입니다. 부석사의 해넘이는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10월말에서 11월초가 가장 적기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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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새벽예불

해넘이에 빠져 있는 동안 7시에 시작된 저녁예불은 참석하지 못했지만, 몇 장의 그럴싸한 사진을 남겼습니다. 관광객들이 떠난 부석사의 저녁은 정적, 그 자체 입니다. 새벽3시 30분에 열리는 새벽예불을 위해 일찍 잠을 청했지만, 큰 방에 혼자인터라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새벽녘 잠결, 멀리서 들리우는 자그만한 목탁 소리에 눈을 뜹니다. 똑똑똑~하는 새벽의 정적을 깨는 목탁 소리가 스님의 독경소리와 함께 점점 다가 오고 있습니다. 부스럭 부스럭 옷을 입고 정신을 차리니 멀리 종각에서 우두다다닥 하는 목어소리와, 덩덩덩덩 하는 법고소리가 들립니다.

폐부로 스며드는 상쾌한 절간의 새벽공기를 마시며 둥우우우웅~우우우 울려 퍼지는 경이로운 범종소리를 뒤로 하고 새벽 예불이 열리는 무량수전으로 올라갑니다. 건조한 기온에 하늘은 맑은듯 보였지만 별은 없습니다. 

노란 텅스텐 등 아래 무량수전 아미타소조여래불 앞에는 두분의 스님과 두분의 보살님이 전부 입니다. 방석을 펴고 자리에 앉으니 마지막으로 청동판으로 만든 운판이 댕댕댕댕에엥~하며 잠시 울린 뒤, 새벽 예불이 시작됩니다.

어둑하며 조용하고 경건한 무량수전의 새벽예불 '지심귀명례 ~'로 시작되는 예불문을 시작으로 반야심경 까지. 그리고 마지막 30분은 조용히 참선을 합니다. 이 와중에 박쥐가 부처님을 스치듯 날아 갑니다.   

축 쳐진 몸과 퀭한 눈으로 새벽예불을 마치고 나니 몽롱한 기운 속에서도 가슴은 뻥 뚫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숙소로 돌아와 부족한 잠을 조금 청한 뒤, 아침 일찍 부석사의 여명을 맞이 합니다. 날은 흐리고 공기는 축축 했지만, 산새소리 들리는 부석사에서의 아침은 더 없이 행복했습니다. 황홀한 일몰도 눈부신 아침도 없었지만, 사계절 언제라도 좋은 부석사 입니다.

부석사 안양루

부석사라는 현판이 붙은 안양루의 포와 포 사이 공간에 부처님이 앉아 계시는 모습이 보인다고 합니다. 시차에 따라 조금 다른데, 오전 11시 가량 빛이 비칠때 무량수전의 노란 벽이 반사되어 노란 가사를 입고 기도하는 모습인 공포불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안양루의 '부석사'현판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친필이라고 하네요.

영주 부석사의 숙식

부석사 템플스테이

종무소 뒷쪽 툇마루가 있는 건물이 손님용 방입니다.

큰방을 배정 받습니다.

깔끔하고 큰 방입니다. 바닥은 열선이 깔려 있어 금새 따뜻해 지더군요. 

종무소 뒷쪽으로 가면 부석사에서 가장 큰 건물인 관음전이 나옵니다. 이 건물 이층이 공양간 입니다. 여기서 저녁을 먹지 못하면 굶던지 컴컴한 길을 따라 주차장 까지 500미터는 걸어 내려 가야 합니다.

큰 공양간에 저녁 먹는 사람은 고작 4명뿐 입니다.

김치전과 우엉볶음, 가지무침,열무김치와 애호박국이 찬으로 나오는데 무지 맛납니다.

다음날 아침 또한 네명이 공양을 합니다. 숭융에 두부조림, 호박, 우엉, 김치,가지반찬

불교의 사물(四物)

가람배치로 보면 우리가 사는 사바의 세계에서 일주문을 지나 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그 다음으로 천왕문 또는 사천왕문을 만나는데 이곳에는 하늘의 왕이자 동서남북을 지키는 수호신, 즉 동쪽의 지국천왕 서쪽의 광목천왕, 남쪽의 증장천왕,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의 사천왕이 무서운 형상으로 있습니다.  

원래 이 사천왕들은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었는데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스스로 귀화해 불법을 수호하고자 지키고 있는 것 입니다. 그리고 천왕문을 지나면 범종루가 나오는데 이곳은 불교 4물이 있는 곳 입니다.  

은행나무 사이로 난 부석사 일주문길

불교4물은 불교4가지의 보물이라는 말로 법고, 범종, 목어, 운판을 말 합니다. 법고는 축생계 짐승, 즉 네발달리 짐승을 위해 울리고 불교 의식에 사용되는 법구 중 으뜸인 범종은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는 소리 입니다 범종을 울릴 때 만은 지옥의 중생들이 잠시나마 고통을 잊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님이 범종을 칠 때 ~ 치고 그 여운이 끝날때 까지 기다렸다가. 다음 종을 치는데요. 1초라도 더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이유 입니다.

목어는, 물속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을 위한 소리 입니다마지막으로 청동으로 된 판을 구름 모양으로 만든 운판은 허공에 떠 다니는 조류의 괴로움과 아픔을 달래는 소리 입니다. 불교 윤회설은 모든 축생 어류 조류 또한 중생의 모습이라 합니다. 

부석사 종각루의 법고

목어와 운판

스님이 범종을 칠 때, 울림을 끊지 않고 계속 두는 이유가 지옥에 있는 중생들이 종이 울리는 때 만은 그 고통에서 벗어 날수 있기 때문에 범종의 울림을 끊지 않고 계속 둔다고 합니다. 범종은 아침 예불에 28, 저녁 예불에 33번 친다고 합니다 

원래 다른 절에는 4가지 사물이 모두 함께 있는것이 정석인데 부석사의 범종은 언제 인지 모르는 시대에 종각을 벗어나게 됐는데, 범종은 한번 나가면 다시 들어 올 수 없다고 해서 따로 종각을 지었다고 합니다.  불교4물고통받는 인간과 미물의 깨달음을 위해 하루에 2, 해뜨기 전과 해진 후에 울립니다. 

지장전 앞에서 안양루를 쳐다 보면 엄마가 애기를 안고 있는것 처럼, 무량수전이 안양루를 안고 있는 모습 입니다. 무량수전은 1300년전 고려때, 안양루는 조선 중기에 지은 건물인데, 어떻게 이렇게 맞춤으로 지었을지 여전히 신기하기만 합니다.  

일주문에서 크고 작은 계단을 밟아 오라 오는데 안양문 바로 아래까지가 108개의 돌계단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불교의 대표적인 숫자인 108, 부처가 제도해줄 수 있는 번뇌의 가지수가 108개라는 의미 입니다.  

안양이라는 뜻은 극락이라는 뜻, 안양문을 지나면 극락으로 들어서며, 부석사가 나타납니다. 부석사 현판은 이승만대통령의 친필이라고 합니다.

 현판의 뜰부자의 삼수변을 자세히 보면 스님이 합장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부석사는 의도하지 않는 곳에서 불법이 생성되고 있는 부처님의 넓은 진리가 담겨져 있다고 합니다. 

부석사 무량수전 뜰에 난 돌배 나무, 맛이 없으니 따는이가 없나 봅니다. 지금처럼 배가 익어가는 때에 오면 바닥에 한가득 돌배가 뒹굴고 있습니다.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애틋한 사랑 전설

부석사는 676년도 의상대사가 왕명에 의해 지은 호국사찰 입니다. 이 시기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지 얼마 되지 않아 민심 수습과 국정을 다스리는 구심점이 필요한 시기였습니. 이 때 문무왕은 불교의 힘을 빌리고자 의상대사와 원효대사를 당나라에 보내 화엄학을 배워 오게 했습니다.  

삼국통일 이후, 신라와 당이 사이가 좋지 않은 시기여서 당에서는 의상대사와 원효대사 두 신라의 승려를 첩자로 여겨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원효대사와 의상대사는 바닷길이 아닌 험한 육로를 통해 몰래 당나라로 가게 됐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두 승려는 며칠을 굶고 허기진 상태에 깊은 산속에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원효대사는 자다가 목이 말라 옆에 있는 물을 마시고 갈증을 해소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침에 보니 자기가 잠든곳은 무덤 안이었고 간밤에 마신 물은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신걸 알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바로 '원효대사 해골물' 이야기 입니다.  

간밤에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고 컴컴하고 어수선한 와중에 마신 이 물은 감로수 처럼 단물이었는데, 아침에 본 해골속의 물은 냄새나고 썩은 물임을 느낍니다. 원효대사는 같은 것을 두고 두 가지 마음이 드는 것을 느낀 후,  '모든 것은 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라는 깨우침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원효대사는 고려로 돌아와서 조계종을 널리 퍼트리게 됩니다. 

재밌는 이야기는 의상대사가 세운 절에는 샘이 없다고 합니다. 의상대사는 수행중에는 땅에서 솟은 물은 절대 마시지 않고 빗물과 이슬만 마셨다고 합니다.  

  의상대사를 사모한 선묘낭자

혼자 남은 의상대사는 당나라 동남산 지장사의 지엄선사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하루는 한 신도집에 머무르게 되는데 그 집에는 선묘라는 낭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묘 낭자는 의상대사를 보고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선묘 낭자는 의상대사를 유혹했지만, 의상대사는 넘어 오지 않고 지엄선사를 만나러 길을 떠나게 됩니다. 그것도 모르는 선묘낭자는 도대체 불교 공부가 무엇 이길래 이토록 대단하단 말인가 해서 선묘낭자 또한 머리를 깎고 회색 법복을 입고 불경을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선묘낭자는 의상대사를 유혹한 죄가 너무 커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세세생생 부처님의 교리를 따르겠다고 맹세합니다.  

의상대사는 동남산 지장사에 가서 화엄학을 7년동안 공부를 합니다. 그런데 당나라가 신라를 침공한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길에 오르게 됩니다 

의상대사는 급한 마음에 육지보다 더 빨리 갈 수 있는 바닷길을 통해 일엽편주같은 조각배를 타고 신라로 향하게 됩니다나중에 그 소식을 전해들은 선묘낭자는 "이 폭풍우가 심한 계절에 조각배를 타고 갔으면 신라에 닿기도 전에 배는 좌초해서 승려는 꿈을 이루지 못할것이다. "라며 

첫번째 보시로 의상대사의 법복을 지어 상자에 담아 바닷가로 가니 의상대사는 이미 배를 타고 떠난 후, 선묘낭자는 법복 상자를 바다에 띄운 후 자신 또한 바다에 재물로 바치며 용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후 용으로 변한 선묘낭자는 스님이 탄 배를 신라까지 잘 이끌어 주었으며무사히 신라에 도착한 의상대사는 당의 침략을 전해 미리 막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공을 크게 삼은 문무왕이 나라를 구한 큰 공을 치아해 큰 절을 지어 줄테니 포교활동을 하라 했지만, 의상대사는 여기에는 이미 많은 절이 있으니 내가 원하는 곳에 가서 절을 짓겠다고 합니다 

왕궁에서 벗어나 전국을 5년여 동안 다니다가 태백산 봉황산 자락에 도착했을때, 이곳에 절을 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당시에는 가는 곳 마다 향을 피우고 푸닥거리를 하는 무속신앙과 민속신앙이 어지러웠다 합니다 

먼저 있던 사람들이 자리를 내 주지 않자 의상대사는 토굴을 파고 화엄학을 포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두명의 신도들이 오더니 어느날 신도수가 천여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한 날은 토굴 부근에 있는 큰 배반석이 하늘로 붕 뜨는 모습을 보고 신도들이 의상대사의 법령을 높이 사 같이 힘을 모아 절을 짓게 되었다고 합니다그래서 절 이름이 뜰 부, 돌 석으로 뜬 돌이 있는 절 이라고 부석사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이는 자기가 사모하는 사람이 절을 짓지 못해 힘들어 하고 있을때, 선묘낭자가 용으로 변해 도와준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에들어 선묘각을 지어 선묘낭자를 모시고 있다고 합니다.  

선묘각 내부에는 용이된 선묘낭자가 의상대사의 배를 보호하고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용을 타고 있는 선묘낭자와 바위를 하늘로 띄우는 그림

선묘각 뒷편 좁은 숲길을 따라 가면 조사당이 나옵니다. 조사당의 당은 집의 높임말로 조사스님이 사시던 집을 말 합니다. 조사스님은 절을 지어신 스님을 말하는데, 즉 의상대사가 사셨던 집입니다.  

 

조사당에는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하고 다시 천축국(인도)로 불교를 공부하러 떠나면서 처마 밑에 지팡이를 꽂았는데, "내가 살아 있으면 지팡이에서 잎이 나고 꽃이피고, 내가 죽으면 지팡이는 지팡이인 채로 있을 것이다." 라고 말 했다고 합니다. 

그 후로 지팡이에서는 잎이 나고 꽃이 피어 영험한 나무로 소문이 나면서 꺽어가고 뜯어가는 일이 많아 져 지금은 철망으로 보호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팡이에서 자라는 나무는 골담초라는 관목입니다.

무량수전은 고려 우왕때 중수해서 지금까지 보수의 보수를 거쳐 현존하는 최고의 건축물이 됐습니다. 배흘림 기둥을 보면 위에는 좁고 가운데로 내려 오면서 넓고 가장 아래는 조금씩 좁아 지는 형태로  수치로 보면 34, 49, 44센치로 사람의 배처럼 흘러 내린 기둥이라고 해서 배흘림 기둥이라고 합니다. 

 

무량수전은 헤아릴수 없을 만큼 큰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는 뜻으로 아미타소조여래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대웅전은 크고 넓고 깊이 있다는 뜻으로 석가모니를 모시고 있죠. 지장전에는 지장보살, 관음전에는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어 현판에 따라 각기 다른 부처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무량수전의 아미타소조여래불은 끝임없는 생명력과 지혜를 주는 분 입니다. 그래서 무량수전 앞 마당에는 석탑을 세우지 않고 석등을 세웠습니다. 석탑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나 불경을 보관 하는 곳 입니다 

 

그런데 석등은 촛불을 밝혀 부처님의 지혜와 진리를 동서남북 네개의 창으로 널리 퍼지라고 석탑이 아닌 석등을 세웠다고 합니다부석사에는 원래 탑이 없었는데 인근 폐사지에서 갖다 놓은 탑 들이라고 합니다무량 수전에서 조사당으로 올라가는 곳에 있는 비보탑 또한 조선후기 풍수지리설이 유행하면서 빈 공간을 매우기 위해 세웠다고 합니다.

모든 절에 가면 본전의 정면에 부처님을 모시는데 비해 부석사에는 정면이 아닌 측면인 서쪽에 배치한 것이 특이한 점 입니다. 

아미소조여래불은 서방정토를 관찰하는 부처님이어서 서쪽에서 오셨으니 서쪽에 오신 모습 그대로 모셨다는 설과, 임금이 있는 동쪽을 보고 모셨다는 설이 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 건물인 무량수전은 기둥위에 포가 한개인 주심포 양식인데 비해 조선중기에 지어진 안양루는 포가 여러개인 다포식 건축양식을 보여 줍니다.   

 

새벽 3시반, 정적을 깨는 부석사 새벽 예불

무량수전에서 삼성각을 따라 가면 관음전과 종무소로 가는 스님들의 통행로가 나타납니다.

양쪽 어깨에 낮은 기와를 올린 박석 길이 삼성각에서 부석으로 무량수전으로 이어집니다.

영주 부석사는 단지 산세가 좋아서 지은 절이 아닙니다. 부석사는 호국사찰로 굉장히 정치적인 목적으로 세워진 사찰 입니다.  

위치적으로도 부석사의 뒷산은 소백산으로 백두대간에서 약간 서쪽으로 뻗어져 나온 산 입니다. 소백산 부석사는 앞쪽으로 경상도, 뒷쪽으로 충청도, 동북쪽으로 강원도와 맞닿아 있습니다. 경상도는 신라, 충청도는 백제, 강원도는 고구려로 세나라의 국민들을 아우를 수 있는 위치에 부석사를 짓고 불교를 통한 민심수습이 그 목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밑에서 보면 안양문, 위에서 보면 안양루, 바람난간이라고도 합니다.

부석사에서 숙박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템플스테이를 알아 보다가 느낀건데요, 요즘 템플스테들이 참선과 수행을 위한 딱딱한 프로그램들만 있는것이 아니라 산사 트래킹이나 사찰음식체험, 타종체험, 캠프파이어, 자아 찾기 같은 힐링 프로그램들이 많더군요. 바쁜 사람들을 위해 당일 프로그램부터 일주일에서 한달까지, 체험형과 휴식형 등 다양하기도 하고요.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의 (www.templestay.com)에 들어가시면 전국 사찰의 다양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정보를 볼 수도 있고 신청도 할 수 있습니다. 소박한 밥 한끼의 소중함과  고통받는 중생을 위해 울리는 범 종의 여운, 의상대사의 해골물까지... 참 많은 것을 생각해 본 부석사에서의 1박2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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