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의 끝자락, 대관령 선자령 백패킹
우리집 아파트 화단에는 이미 매화와 산수유 나무가 꽃잎을 뻥~튀기듯 피웠습니다. 다음으로 목련이 누이같이 소담스런 꽃잎을 봉긋히 올리겠죠, 다음 차례는 벚꽃이 이어받아 온 세상을 드디어 봄 천지로 만들고요, 그리고 샛노랑 개나리와 붉은 장미가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요. 이렇게 올해 겨울도 끝이 나나 봅니다.
하지만 강원도 대관령 선자령에는 3월의 폭설 소식이 들립니다. 마음은 벌써 배낭을 열번도 넘게 쌋지만 현실이 발목을 잡습니다.
이렇게 겨울을 보낼순 없다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이미 늦었어, 벌써 겨울은 끝이야! 눈은 다 녹고 비까지 온다잖아"라는 속삭임이 귓전을 맴돕니다.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늦었을 때라고 했던가요? 그러거나 말거나 선자령 눈밭으로 향하는 굳은 결심에 못을 박았습니다.
오랫만에 배낭을 꾸립니다. 가장 중요한 침낭과 매트리스, 텐트.. 랜턴 간단한 먹거리, 혼자라서 여느때와 달리 짐이 단출합니다. 이렇게 혼자 가는건 처음입니다. 앞으로 자주 혼자 갈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비예보에 대관령옛휴게소 주차장은 한산 합니다.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5킬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 입니다. 눈이 별로 없을거라는 예상과 달리 들머리 초입부터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 입니다. 항공무선표시소 부터 시작되는 산길은 심각합니다. 30cm 정도 쌓인 눈이 슬러시가 되면서 발목끝까지 푹푹 빠집니다. 아무리 목이 긴 중등산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장화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런 질퍽한 눈길을 세시간여 힘겹게 올랐습니다. 지금까지 열댓번을 왔던 그 어떤 선자령보다 최고로 힘든 오늘 입니다.
6시가 조금 안되어 도착한 선자령 넓은 들판에는 불을 밝힌 텐트는 달랑 한동 입니다. 저는 좀 더 위로 올라 텐트를 설치 할 자리를 찾습니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 속으로 간간히 드러난 땅에는 물이 흔건히 고여있습니다. 어디에도 마른땅이나 마른 눈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 나마 물이 가장 적은 자리를 찾습니다.
지난밤?지지난밤? 누군가가 애 써 파놓은 자리에 텐트를 세우고 불을 밝혔습니다. 풍력발전기의 팬이 붕붕~ 험악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지만 아랫쪽에는 바람이 거의 없습니다. 선자령에서 눈을 보는것과 바람을 맞지 않는 것은 축복이죠.
지난주 대관령 폭설 이후 선자령 초원에는 텐트를 치기 위해 파 놓은 구덩이들이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저야 남이 파 놓은 자리에 숟가락만 올린격입니다.
텐트에 등불을 밝히고 야경사진도 찍어 봅니다. 구름이 자욱해서 그다지 좋은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무게는 가벼운데 부피가 있어 이 등불을 가지고 갈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잘 가지고 온 것 같습니다. 배터리 충전 랜턴인데 가솔린 랜턴같은 노란 불빛이 감성적인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밤새 켜놔도 배터리가 남았습니다.
저녁 9시가 되자 텐트를 사정없이 두드리는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이 빗소리는 다음날 주차장에 도착할때 즈음 멈춥니다.
빗소리와 함께 선자령의 악마같은 송곳니가 으러렁 하고 드러납니다. 드디어 본격적인 바람이 불기 시작하나 봅니다. 텐트가 들썩들썩 춤을 추기 시작하자 긴장감도 춤을 춥니다. 밤새 폭풍같은 소리에 선잠을 잔 것 같습니다. 아침에는 한 쪽 팩이 빠져버려 뒤집히는 텐트를 온 몸으로 막아야 했습니다. 악몽입니다. 비를 맞으며 팩을 다시 박고 헐거운 다른곳에 팩도 다시 빽업합니다.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고 따뜻한 커피를 한잔 들이키니 이제야 정신이 듭니다. 이제 철수해야 할 시간 이지만 밖은 여전히 폭풍과 빗속입니다. 일기예보에는 11시 부터는 비가 멈춘다고 합니다. 그때까지 할것도 없고 철수를 강행합니다. 텐트 속에는 마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배낭부터 침낭까지 모든것이 축축 합니다. 배낭에 모든 짐을 쑤셔넣고 하산을 시작합니다. 밤새내린 비로 쌓인 눈은 어제의 반으로 줄어있습니다. 길은 더욱 질척질척 합니다.
이제 겨울 끝, 봄 꽃맞이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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