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만에 찾은 삼각봉

반응형
반응형

백양산 삼각봉의 추억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였으니깐 시간은 30년하고도 몇 년 전 이다. 동네어딜가나 보였던 백양산 능선의 남쪽 끝 삼각봉, 당시 우리끼리는 '삼각산'이라고 불렀다. 산 아래에서보면 뾰족한 바위3개가 묘하게 쏟아 있어 그렇게 불렀다.  

사상초등학교를 지나 미로같은 골목 몇개를 지나면 경부선 철길을 가로지르는 쇠로 만든 육교가 나왔다. 육교를 지나면 야산을 개간한 계단식 밭들과 판자집들이 너저분하게 있었다. 좁다란 동네길을 따라 산으로 이어진 길을 걷다 보면 키큰 소나무숲 사이로 넓직한 등산로가 나왔다.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이었다. 

배낭도 없고 간식도 없고 물통도 없는 맨몸뚱아리, 슬리퍼에 반바지 하얀 런닝티가 전부 였다.   

골골이 긴 뿌리를 반쯤 드러내놓고 있던 소나무 숲을 오르다 보면 쏘아대는 트위터 처럼  쐐쐐~ 하고 울어 재끼는 산매미 세상으로 들어선다. 여기서부터 길은 완만하게 산 허리를 왼쪽에 끼고 휘돌아 간다. 소나무숲은 이내 느티나무같은 활엽수들에게 자리를 내줬다. 노란 황톳빛 땅에는 반딧불같이 빛나는 태양 알갱이들이 나뭇잎을 피해 정신없이 돌아다닌다.

울창한 숲속은 지금으로 치면 '레고방' 이다. 매미, 잠자리, 사마귀, 하늘소, 왕개미, 개구리들은 아이들의 장난감이다. 

곤충들을 실컷 괴롭히고 나서야 아이들은 자리를 일어선다. 골짜기로 들어서기 전 하늘이 뻥 뚫린 넓다란 무덤이 나온다. 풀이 무릎까지 자란 무덤 주위는 '키즈까페'이다. 

어깨가 따갑고 머리가 뜨거워 어질어질 할 즈음 아이들은 숲속 골짜기로 발길을 옮긴다. 한점의 티도 없이 맑은 물이다. 거창한 계곡까지는 아니고 졸졸졸 물 흐르는 계곡이다.  한 두평이나 될법한 계곡에 돌무더기로 댐을 쌓았다. 얕았던 계곡은 제법 물놀이를 할 만큼 깊어졌다. '워터파크'다.계곡을 거슬러 얼마를 더 올라가면 편편한 미끄럼 바위가 나온다. '슬라이드'가 따로 없다.     입술이 새파래 질 즈음 벗어두었던 반바지와 런닝을 챙겨입는다. 지금부터는 논거였고 이제부터가 등산이다. 골짜기를 따라 이어진 길을 올라간다. 골짜기 건너편으로는 무서워서 들어가보지 못한 삼각 동굴이 보인다.길은 점점 좁아지고 희미해진다. 작년에 맛있게 따먹었던 머루가 올해는 하나도 열리지 않았다. 대신 호주머니속에 굴러다니는 익지 않은 개암열매를 깨어문다.  졸졸 흐르던 물길이 숨어 버리자 내 귀가 없어진것 처럼 세상의 모든 소리도 한꺼번에 사라져 버렸다. 진공의 세계가 이러할까.황량한 바위산과 따끈한 공기, 달콤하고 푸릇한 향기만 있을뿐 이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없다. 길이라고 생각되는 곳을 오를 뿐이다. 가늘게 자란 나무들과 풀을 뜯고 헤치며 산을 오른다. 푸석 바위가 가루가 되어 롤러를 탄 듯 미끄럽다. 

얼마를 갔을까? 순식간이다. 어른들은 모르는 사차원세계로 튀어나온 폴과 삐삐 처럼 이상한 나라가 눈앞에 펼쳐진다.

노란 원추리꽃과 초록 풀들이 바람따라 흔들리는 초원이다. 하늘은 파랬고 아래로 저멀리 도심을 건너 바다도 보였다. 왼쪽 봉우리로 올라가는 능선 끝까지 초원이 펼쳐 졌다. 이곳 능선도 길이 있는듯 없는듯 알 수 없다. 아이들은 올라왔던 길에 기다란 막대기를 꽂아 두고 삼각봉으로 향한다. 

키보다 두세배는 되 보이는 뾰족한 바위덩어리들이 등을 기대 있는것 같았다. 삼각봉 정상이다. 남쪽으로 용두산 공원의 타워 꼭대기가 보였다. 

삼각봉 바위 틈에 가지고 온 긴 막대를 꽂아 놓고는 되돌아 간다.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보이는 봉우리를 올랐다. 초읍 어린이대공원의 하얗고 동그란 '어린이회관'건물이 보인다. 지금보니 이곳이 백양산 정상이었다.  

능선을 내려가면서 길을 찾지 못해 몇번을 왔다 갔다 했다. 올라올때 세워둔 나무막대기가 바람에 쓰러져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몇수십년이 지난 2015년 설날, 지금은 백양산 반대쪽 부암동으로 이사를 했다. 백양산을 관통한 백양터널에서 길을 물어 산을 오른다.역시 남쪽이라 사스레피나무, 동백나무 같은 파릇파릇 상록성 나무들이 많다. 이십분쯤 갔을까. 넓고 평평한 길이 나온다. 갈맷길이라고 한다. 산불감시 초소에 길을 물어 다시 오른다. 이삼십분이나 되었을까. 벌써 정상이다. 이렇게 싱거울수가 있나 싶었다. 

 

20150219/백양산삼각봉 

 싱거운 산행후 덜컥 도착해 버린 삼각봉 전망쉼터. 오른쪽 낙동강과 을숙도가 조망된다. 

 

어린 기억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삼각봉'이다. 데크와 망원경이 있어 편하게 조망할 수 있다. 정상석 뒤로 난 바위 사이에 억지로 꽂아놓은 막대기가 생각난다. 그 옛날 이곳에는 사람이 거의 오지 않았었다. 

 

 철탑이 언제 생겼을까? 철탑 뒤로 보이는 봉우리가 백양산 정상이다. 철탑의 오른쪽, 능선 서쪽은 나무가 없는 초지였다. 

 

원추리꽃 바람에 흔들리던 초원의 능선은 무성한 나무로 뒤덮혀 있다.   

 

옛날 지금의 신라대 방향으로 올라왔었던것 같았다. 예전 꽂아 두었던 막대기 대신 튼튼한 이정표가 생겼다.  

 

그렇게 우거졌던 울창하게 많았던 나무들은 간벌을 했는지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 있다.  

 

십분여를 내려오자 대로가 나타났다. 갈맷길이다. 어이가 없다.  그 옛날 심심산골짜기에...

 

조림된 듯한 소나무 사이로 4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편백나무들이 심겨져 있다.

 

 어릴적 마을에서 이곳까지는 거의 한시간 이상은 들어와야 했었던 깊은 골짜기 였던 곳에 약수터며 운동시설이 들어섰다. 

 

삼각봉을 올라가고 내려오면서 유일하게 어릴때의 기억을 찾을 수 있었던 넓적바위, 여름날 빨간 넓적바위위로 시원한 계곡물이 반질반질 흐르면 배를 깔고 누웠다.  

 

 

여기 소나무는 몇살일까? 하늘을 빼곡히 가린 솔숲

 

솔숲이 끝나자 이내 회색빛 건물이 나타났다. 최소 한시간이상은 올라와야 했던 이곳에 학교건물이 들어섰다. 울창했던 느티나무며 무덤가며 댐을막아가면서 놀았던 계곡들이 사라졌다. 

 

신라대학교에서 삼각봉까지 채 한시간이 걸리지 않는 거리다. 올라가는 중간에 커다란 갈맷길이 지나간다. 

 

나에게는 워터파크이자 키즈카페였고 장난감창고이자

꿈동산 이었던 기억의 팔할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사라진 기억위로 학교가 들어섰고 아파트단지들이 세워졌다. 

 

반응형

'아웃도어에서 > 등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낡은 등산화  (0) 2015.04.28
달라진 북한산 도선사 광장  (2) 2015.04.21
넉넉한 산행  (0) 2015.03.16
시한폭탄 같은 등산화  (1) 2015.03.16
이겨울 월출산  (0) 2015.02.10
발정난 강아지와 함께한 복계산 산행  (2) 2015.01.21
민주지산  (0) 2013.12.17
덕유산 소경  (0) 2013.12.17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