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을 품은 유일한 곳, 연천 호로고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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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의 휴전선 연천 호로고루성

함경남도 마식령에서 발원해 고미탄천 편안천 한탄강 등의 지류들이 모여 김포 부근에서 한강과 합류해 서해로 빠져나가는 임진강, 삼국시대부터 백제와 고구려 신라의 국경 이었고 나당연합군과 고구려, 신라와 당나라가 한판 승부를 벌인 전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었던 곳이 바로 경기도 연천의 임진강 하류에 있는 '호로고루'라는 성 입니다. 이곳은 백제의 근초고왕,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장수왕 그리고 신라까지 전 시대를 품은 곳이자, 남쪽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구려성이기도 합니다.   

임진강 북안의 현무암 수직단애 위에 앉아있는 호로고루성은 임진강을 오고가는 배들을 한눈에 굽어 볼 수 있는 지리적 요충지 입니다. 호로고루는 당포성, 은대리성과 함께 연천 고구려3대성 중의 하나로 삼국시대때 고구려와 신라의 건축기술을 비교할 수 있는 '보루'가 있기도 합니다. 

누구라도 호로고로성에 올라보면 왜 이곳에 성을 만들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사방이 한눈에 내려 보이는 요지 중에 요지 입니다. 호로고루성 앞으로 흐르는 임진강은 장마철을 제외하면 수심이 무릎 정도여서 기마부대가 건널 수 있었던 남쪽 첫번째 여울목 입니다. 개성과 한양을 연결하는 가장 빠른 육상교통로가 지나는 곳이며 한국전쟁 당시에도 북한군 1사단이 전차를 앞세우고 호로고루성 여울을 도하, 문산에서 파주, 고양, 구파발쪽으로 남침했던 루트였고 1968년 1.21 무장공비 침투사건의 김신조 일당의 남침루트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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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고루(瓠蘆古壘)라는 이름은 임진강을 삼국시대부터 '호로하 (瓠瀘河)'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루(壘)는 성(城)이라는 의미가 있으니 '호로강의 옛 성'이 되겠네요.서쪽방면으로 바라본 호로고루성의 모습입니다. 

동쪽에서 바라본 호로고루성의 모습입니다. 성의 둘레는 401m, 남쪽과 북쪽은 현무암 절벽을 자연성벽으로 삼고 평야로 이어지는 동쪽에만 너비 40m, 높이 10m, 길이 90m의 성벽을 쌓아 삼각형 모양의 성을 만들었습니다. 

호로고루성으로 가는 입구에는 홍보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쪽으로 실물 크기의 복제 광개토대왕비가 있습니다.

동아시아를 지배했던 광개토대왕의 기상이 엿보이는 크기입니다.  

광개토대왕릉비는 2002년 북한에 있는 국보급 고구려 유물 및 벽화고분을 북한에서 직접 모형으로 제작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은 영토를 많이 넓힌 아버지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 동쪽(현재 중국 지린성 지안현 퉁거우 지역)에 광개토대왕의 능과 함께 비를 세웠습니다. 광개토대왕릉비는 불규칙한 직사각형 모양의 커다란 각력응회암의 4면에 44행 1,775자의 비문을 새긴 비로 높이는 6.39m이고 너비와 폭은 1.35~2m입니다. 비문의 내용은 앞머리에 건국시조인 주몽에서부터 광개토대왕까지 왕들의 계보와 업적이 적혀있고, 본문은 광개토대왕의 정복활동과 경계지역을 돌아본 일들이 적혀 있으며 끝머리는 무덤을 지키는 묘지기들의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본래의 모습은 유실되고 아랫쪽 일부 성벽들의 모습만 볼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당시에는 북한군의 포대로, 그 이후에는 우리군의 참호가 파였고, 축사로 쓰이기도 뱀을 잡는 땅꾼이 성곽을 무너뜨리기도 하는 등 수난을 당한 호로고루성 입니다. 

성을 올라가는 화강암 계단이 이채롭습니다. 성에 올라서서 탁 트인 임진강을 배경으로 인생사진을 찍는 곳이기도 합니다. 

성 안쪽에 있는 집수 시설 입니다. 집수시설은 물을 모으는 공간으로 우물이나 저수지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합니다. 규모로 봤을때 군사들의 숫자가 수백 수천명은 됐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강 서쪽에는 고구려 호로고루성이 동쪽에는 신라의 이잔미성이 국경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습니다. 삼국시대의 휴전선이나 마찬가지였죠. 그리고 호로고루성에서 남쪽방향으로 바라보면 지금은 흔적도 없는 고랑포구가 아스라히 나타납니다. 고랑포구 위쪽에는 신라 56대 왕이자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능이 있습니다. 신라왕 중에서 유일하게 경주를 벗어난 왕릉이어서 더 애절함이 느껴집니다. 경순왕하니 마의태자와 충주 미륵대원지가 떠 오릅니다. 이렇게 역사는 꼬리에 꼬리를 잇나 봅니다.  

고구려의 멸망

668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합니다. 당나라는 북쪽에서 신라는 남쪽에서, 위 아래로 공격을 당한 고구려의 수 많은 성이 차례로 무너졌고 결국 고구려는 멸망하게 됩니다. 수나라와 당나라의 엄청난 공격에도 끝까지 버텨냈었던 고구려였는데 말입니다. 

수십 수만년을 흐르는 임진강물은 남으로 굽이쳐 한강과 만난뒤 서해로 이어집니다. 길고긴 역사의 수레바퀴속 호로고루성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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