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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벽수산장의 흔적

국내여행 by 심심한사람 2025.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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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서쪽, 인왕산 아랫마을 옥인동에는 아주 예전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건물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사라져 그 흔적들만 조금 남아 있는 정도인데, 과거 사진 속의 모습은 마치 유럽의 궁전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습니다. 

 

서촌이나 인왕산을 꽤 다녔지만 그런 건물이 있었다는 자체를 몰랐다가 얼마전 오래된 사진으로 알게 됐습니다. 호기심에 자료를 검색하고 직접 그 흔적들을 찾아 서촌에 다녀왔습니다.

 

친일파 윤덕영의 호화 별장 '벽수산장'

오늘 찾아간 곳은 일제강점기 최고의 부자였던 윤덕영이란 사람이 지은 별장 '벽수산장'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윤덕영(1873~1940)은 구한말 순종의 황후인 순정효황후의 큰아버지로 1910년 국권침탈 때 순종에게 강요, 한일합방조약(경술국치)에 옥새를 찍게 한 대표적인 친일파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친일파 이완용은 명함도 못 내밀정도로 최악의 매국노였다고 합니다. 윤덕영은 한일합방의 공로로 일본으로부터 은사금 400억과 서촌의 땅 19,467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옥인동 군인아파트(지금은 세종아파트)에서 인왕산 방향으로 눈에 들어오는 땅 전부가 윤덕영의 땅이었다고 합니다. 

 

친일 매국노 윤덕영은 그 돈으로 경복궁이 내려다 인왕산 자락 서촌 언덕에 호화로운 궁전을 짓고 근처에 99칸 한옥과 가족들을 위한 집들을 지었습니다.

 

윤덕영의 호화 궁전인 벽수산장은 대지 만여평, 건평 600여평에 200평 규모의 수영장 있을 정도로 호화스러웠으며 조선의 아방궁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벽수산장

경복궁이 내려다 보이는 옥인동 언덕에 호화 아방궁 벽수산장을 짓고 윤덕영은 이곳에서 천수를 누리다 1940년 죽었다고 합니다. 이후 벽수산장은 1941년 일본의 한 회사에 소유권이 넘어갔다가 해방 후, 병원으로 사용됐으며, 한국전쟁 때는 유엔군 장교 숙소가 됐다가, 1954년에는 '언커크'로 불렸던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United Nation Commission for the U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of Korea)가 사용하다 1966년 화재로 방치되다 1973년 완전히 철거 됐다고 합니다. 

 

2005년 그의 후손들이 재산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 윤덕영이 소유하고 있던 땅은 국가에 귀속됐다고 합니다.  

벽수산장 윤덕영

       벽수산장과 뒷쪽 인왕산의 모습

벽수산장

이 사진은 지붕이 무너져 뼈대만 남아 있는 것으로 봐서 화재 이후의 사진인 것 같습니다. 벽수산장은 1966년 4월 5일 식목일, 지붕 보수공사 중 용접공의 실수로 화재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벽수산장을 찾아 떠난 서촌 골목여행

송석원터 위치

CU옥인동점 건너 세종아파트쪽으로 살짝 올라가다 보면 만나는 송석원터 돌판, 벽수산장이 있던 이곳은 원래 송석원이라는 곳이라고 합니다. 송석원은 조선 후기 벼슬에 들지 못한 중인 계층의 시문 모임의 중심지로 지금은 주택가로 변해버린 이곳이 그 옛날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져진 인왕산 최고의 절경, 옥류동 계곡이었다고 합니다.  

군인아파트에 남은 서촌 옥인동 벽수산장 흔적

군인아파트였던 세종아파트 쪽문 안쪽에 남아 있는 오래된 석물은 벽수산장의 정문을 들어서면 오 홍교라는 다리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다리의 동자석 2개와 오른쪽 바닥의 난간석 두 개가 남아 있습니다.   

서촌 옥인동 벽수산장

다리 난간에도 꽤 정성을 들여 모양을 냈습니다. 

서촌 옥인동 벽수산장

골목 좌우로 있는 구둥은 벽수산장 입구 대문기둥, 문주입니다. 

서촌 옥인동 벽수산장서촌 옥인동 벽수산장

벽수산장 철거 이후 그 위에는 벽수산장의 버려진 석재들을 재활용해 계단을 만들고 벽과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시멘트를 부어 집을 만들었습니다. 빛바랜 백수산장의 석재들은 지금도 옥인동 골목 여기저기에서 산개해 있으며 가정집 마당이나 더 내밀한 곳에도 많은 흔적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러고 보니 몇 해전 다녀온 부산의 한 달동네가 떠 오릅니다. 이곳은 부산 아미동의 비석마을이라는 곳인데, 한국전쟁 이후 일제 강점기 일본인 공동묘지였던 곳에 집을 지은 동네입니다. 가파른 경사는 일본인 비석과 상석으로 계단과 디딤돌을 만들었고, 상석은  주춧돌이 되었고 비석은 담벼락이 되기도 했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마을, 비석마을

 

산자와 죽은자의 마을, 비석마을

부산 비석마을 부산 비석마을 다녀온지가 몇달이나 지났는데 이제서야 포스팅을 합니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라는 원칙으로 살아 왔는데, 포스팅은 저에겐 일이 아니었나 봅니다.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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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옥인동 벽수산장

벽수산장 입구에 남아 있는 벽

옥인동 윤씨 가옥

벽수산장 주변에는 윤덕영이 가족과 친인척들을 위해 지은 건물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옥인동 서용택가라고 불렸던 '윤 씨 가옥'과 '박노수가옥'만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윤씨가옥

이곳은 옥인동 '윤씨가옥'이라고 불리는 한옥입니다. 1919년 윤덕영이 자신의 소실(첩)을 위해 지은 집입니다. 고급스러운 장대석 돌계단이 대문까지 이어집니다. 

 

윤 씨 가옥은 윤덕영의 조카이자 순종 황제의 계비였던 순정효황후 윤 씨의 생가로 잘못 알려졌다가 이후 사실관계가 규명되면서 지금까지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윤씨가옥

마름모, 네모 줄무늬로 장식한 담과, 처마장식 또한 예사롭지 않습니다. 

서촌 옥인동 벽수산장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중이라 가림막이 둘러 있습니다. 옆으로 가니 기다란 돌계단이 나타납니다. 그 옛날 그대로 반듯합니다.   

옥인동 윤씨가옥

서울시가 2022년 말, 방치됐던 윤씨가옥을 매입해 리모델링을 거쳐 시민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올해 상반기 공개한다고 했는데 상황을 보니 어림도 없을 것 같습니다. 

옥인동 윤씨가옥

기둥과 대들보만 남고 다 뜯어 낸 모습입니다. 

옥인동 윤씨가옥 리모델링

언제 개방할지 알 수 없지만 개방되는 날 다시 서촌에 와 봐야 겠습니다. 

벽수산장 한바퀴

육씨가옥 뒤로 올라가면서 서촌의 내밀한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만납니다.  이렇게 가까운 도심에서 인구소멸 지역에서나 볼 법한 삶의 흔적들입니다.  

옥인동 텃밭

지금은 호박덩굴이 뒤덮은 버려진 텃밭에 동력 운반차가 서 있습니다. 이 좁은 텃밭에서 뭘 싣고 다녔을까요?

옥인동 폐허

1층, 2층, 3층, 축대가 2개, 집도 3채가 있었던 장소겠죠?

옥인동

윤 씨 가옥 뒤편 좁은 골목으로 올라가면 허물어져 가는 집들이 나타납니다.  차가 들어올 길이 없으니 수리도 어렵고 한옥보존지역 같은 건축법령도 까다로워 증축이나 개축 같은 것도 만만치 않나 봅니다.  

옥인동 가스통

도시가스가 없어 프로판가스를 사용하나 봅니다. 가스통 하나에 40kg, 이걸 둘러메고 계단을 한참 올라와야 하는 집입니다.   

옥인동 폐가

윤 씨 가옥 뒷길은 필운대로 9가 25-6번지, 대부분 집은 비어 있는 듯 보입니다. 

옥인동 폐가

족히 50년은 더 되어 보이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해방촌의 집들이 얽기섥기 엮여 있던 이곳도 비슷한 처지입니다. 

서촌 옥인동

버려지고 헐리고 빈 땅으로 남고, 재개발을 기다리는 건지 쉽게 손대지 못하는가 봅니다. 

서촌 옥인동

여전히 장사를 하고 있는 구멍가게를 만납니다. 

 

여기서 옥인동 방향 서촌의 하이라이트 수성동 계곡 쪽으로 가다 보면 윤덕영이 딸을 위해지어 줬다는 3층 양옥 건물이 온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 건물은 1970년대 화백 박노수가 구입해 살다가 2011년 종로구에 박노수 미술관으로 기증했습니다. 박노수 화백은 배우 이민정의 외할아버지입니다.

윤덕영 사진

벽수산장 각자가 새겨진 바위 아래 앉아 있는 윤덕영, 벽수산장은 추사 김정희가 쓴 '송석원'이라는 글씨 옆에 세로로 새겨졌는데 윤덕영의 친필이라고 합니다.  

벽수산장 글씨장소

벽수산장의 글씨가 새겨진 위치는 옥인동 47-253번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옹벽을 만들면서 시멘트로 덧칠하면서 각자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벽수산장 글씨 장소

이곳이 벽수산장 바윗글이 새겨진 곳이라고 추정되는 옥인동 47-253입니다. 이 집 측면 옹벽 속 바위에 벽수산장과 송석원의 글씨가 잠들어 있다고 합니다. 넓은 마당과 주차장에 단단하게 잘 지은 양옥집인데 지금은 버려진 채 48억 5천에 매물로 나와 있습니다. 

 

세월이 변하고 세상이 변하고 권력이 변하고 세대가 변하듯 강산도 변합니다. 천년만년을 갈 것 같던 금석문도 한 줌 시멘트에 묻혀 사라졌습니다. 결국 소멸하는 인생은 바람과 구름처럼 덧없지만, 그전까지는 열심히 살아야겠지요. 이상 벽수산장의 흔적을 따라 돌아본 서촌 골목길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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