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와 죽은자의 마을, 비석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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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비석마을

부산 비석마을 다녀온지가 몇달이나 지났는데 이제서야 포스팅을 합니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라는 원칙으로 살아 왔는데, 포스팅은 저에겐 일이 아니었나 봅니다. 처음의 생각을 이어나가는게 쉽지 않은 요즘 입니다. 

부산에서 스무몇해를 살면서도  '비석마을'이라는 이름은 들어 보지도 못했습니다. TV를 보고 "부산에 저런데가 다 있었구나' 하면서 신기해 할 정도 였거든요.

여름 휴가로 고향인 부산을 방문하고 시간을 내어 '비석마을'을 가보기로 합니다. 비석마을은 부대병원 위에서 감천쪽으로 넘어가는 유명한 아미동 달동네에 있더군요. 

그러구 보니 예전에 한두번 와 본 기억은 있는데, 그때만해도 일본 무덤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이야기는 들어보질 못했습니다. 그냥 부산에 쌔고 쌘 달동네중 한 곳이었죠. 

원래 있던 아미동 달동네에 벽화를 그리고 일반사람들이 잘 알지 못했던 공동묘지 이야기를 발굴한 '도시재생 사업'의 하나 입니다. 그것도 꽤나 무섭기도 하고 흥미 있기도 한 이야기가 있는 곳이 됐습니다. 

'세상에 이런일이'나 '신비한 이야기 스프라이즈'에 나올법한 부산 비석마을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1876 부산항이 개항되자 중구와 서구를 중심으로 정착하는 일본인들이 늘어나게 됐습니다. 따라서 사고사나 병사로 인해 죽는 사람들도 생기게 됐습니다. 1929년 아미동에 일제 신식 화장로를 갖춘 화장장이 들어서게 되면서 지금의 아미동 산 19번지 감천고개에서 산상교회까지 이어지는 감천고갯길 일대에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의 공동묘지가 생겨나게 됐습니다.    

공동묘지에 집을 짓다

해방후 일본인들이 떠나고 황폐해 있던 일본인 공동묘지는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새롭게 바뀌게 됐습니다. 죽은 자들의 음택이 살려고 몸부림 치는 산자들의 양택으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한국전쟁 당히 인민군을 피해 부산으로 밀려 내려온 피난민들의 수가 부산인구의 열배라고 합니다. 산과 고갯길이 많은 부산에서 외지에서 들어온 피란민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산비탈이 전부 였습니다.  그나마 산비탈을 깎고 깎아 판자집이라도 지은 사람들은 형편이 나았습니다.  그 런 자리 마저도 구하지 못했던 피란민들은 일본사람들의 묘비 위에 천막을 치고 판자를 올려 지내야 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 낳은 비참하고 처참한 시대의 비극 입니다. 죽은 자의 묫자리와 비석을 주춧돌로 삼다 보니 수 많은 귀신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고도 합니다. 없다면 더 이상하겠죠. 지금도 큰 길가에서 깊숙이 들어간 골목 곳곳은 대낮임에도 어시시한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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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석마을 탐방

비석마을은 아미골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윗쪽으로 올라갑니다.  

향수를 부르는 떵차가 나타났습니다. 여전히 푸세식 화장실이 있나 보죠. 떵차를 보면 그날 운이 좋다고 하던데... 세번을 봐야 했던가?

비석문화마을 쉼터가 나타납니다. 아미동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아미동 일본인 공동묘지와 부산항, 가운데 낮은 산은 용두산이다.  

고딩 형님 누나들의 깜장 교복에서 사진도 찍어 봅니다.

비석마을의 시작을 알리는 집이 나타납니다. 이 집은 묘지의 바닥과 벽체를 온전히 활용해서 그 위에 집을 지었습니다. 

일본인 망자의 비석들 입니다. 

비석마을은 일본인 비석을 찾는것과 함께 옛시대의 생활사를 전시하는 공간이 있기도 합니다. 

빈 집을 50-60년대 생활사 박물관으로 만들었습니다. 

마을 공동 빨래방도 있네요.

빨래방을 쌓아 올린 비석들입니다. 

비석은 주춧돌이 되기도 하고 계단석이 되기도 하고 화분 받침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마을 곳곳 숨은그림 찾기 하듯 박혀 있는 비석들을 찾는 재미가 있습니다. 

곳곳에는 오래도록 비워진 폐가들도 많아 밤에는 이곳 이야기와 함께 꽤나 으스스한 장소가 될 것 같습니다. 

다시 공영주차장으로 내려와서 이번에는 반대방향으로 향합니다. 

바로 '휴먼'이라는 사진집으로 유명한 사진가 최민식 선생님을 보기 위해서 입니다. 

아미문화학습관에 있는 최민식 갤러리 입니다. 저는 최민식 선생님을 자갈치에 있던 사진재료점에서 한번 뵙고, 그리고 학교에 강의 나오실때 한번 정도 본 것 같습니다.  

최민식 작품 감천문화마을

선생님의 유품들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의 사진은 캔디드포토 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몰래카메라나 마찬가지였죠. 그의 사진에서는 시대를 관통하는 아픔이 느껴집니다.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들이 그의 작품이 되었다.  

진분홍 능소화꽃, 회색빛 콘크리트와 일본인 비석,  나는 지나가는 구경꾼이지만 누구에게는 아픈 기억이자 역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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