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도 북배에서의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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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풍도 북배, 백패킹 이야기

야생화가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피는 3월의 정 가운데, 백패커들에게 유명한 풍도 북배에 갔습니다. 백패킹을 시작하면서부터 풍도 북배에 대해 많이 듣고 블로그를 통해서 봐 왔기 때문에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왔습니다. 그것도 풍도 야생화가 최고 절정을 맞는 날짜와 겹칩니다. 복권을 맞춘 기분입니다.

 

본격적인 풍도 백패 포스팅 전에 풍도에 대해 간략하게 나마 알고 가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대상에 대해 잘 알면 그 만큼 더 많이 볼 수 있는 법이니깐요. 

 

 

 

풍도는 동경 126도, 북위37도로 주소는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입니다. 면적은 1,843㎢로 여의도의 2/3 정도이며 인구는 120여명 정도이며, 대부도에서 바닷길로 24km떨어진 서해의 작은 섬 입니다. 주변으로는 승봉도, 대난지도, 육도, 열도 등이 있습니다.

 

본래 남양군 대부면에 속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부천군으로, 1973년에는 옹진군으로 마지막으로 1994년에 안산시에 편입됐습니다. 인천항에서 하루 한차례 운행하는 정기 여객선을 타고 2시간 30분을 가야 하는 낙도 입니다. 풍도는 조선시대 당진팔경 중 8번째의 '풍도요망'에 속 할 정도로 아름다운 섬이기도 합니다. 

특히 단풍이 절경이라고 하는데요, 조선시대에는 단풍나무가 많아 단풍(楓)자를 쓰다가, 1909년 남양부 대부면 하부 행정리로 편제되면서 현재의 풍년 풍(豊)자를 쓰고 있습니다. 아마도 농토의 부족과 넉넉지 못한 해상자원의 풍요를 소망하는 마음에서 풍년 풍(豊)자를 사용한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봄철에는 야생화가 많이 피는데요, 복수초, 노루귀, 변산바람꽃, 붉은대극 등이 풍도의 자태와 더불어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사진애호가들을 불러 들이고 있습니다. 또한 달래와 사생이라 부르는 전호, 둥글레, 산더덕과 두릅 등의 산나물과 약초가 많이 나서 주요 관광 수입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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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도로 가는 길

인천에서 아침 9시30분에 출발한 서해누리호가 정확히 10시30분이 되니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에 도착했습니다. 현장발권은 선착장 앞에 있는 승합차에서 하고 있더군요. 

 

풍도로 들어가는 배는한림해운의 서해누리호로 인천과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에서 하루 한차례 왕복 운행합니다. 홀수날은 육도를 경유하기 때문에 30분이 더 소요됩니다. 홀수날은 인천에서 풍도까지 3시간, 짝수날은 두시간30분이 걸리는 셈입니다. 

 

 

멀리 시화호의 철탑을 뒤로 한 채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풍도로 달려 가고 있습니다 .

 

2층의 좌석은 자리가 없어서 1층 따뜻한 마루바닥에 앉았습니다. 매점도 함께 있습니다.

 

두시간 여, 물살을 헤치고 풍도 입항을 앞두고 있는 서해누리호와 선장님 입니다.

 

대남초등학교 풍도분교 입니다. 수업중인지 학교는 조용합니다. 아이가 몇이나 있을까요?

 

넙적하게 생긴 서대라는 물고기가 해풍을 맞으며 꼬들꼬들 말려지고 있습니다. 
 

하늘 높은줄 모르고 높이 높이 올라 있는 생선들입니다. 신기한 광경입니다.

 

이렇게 그물망에 넣어 하늘 꼭대기까지 올려 생선을 말리고 있습니다.

이유인즉 도둑고양이들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을에는 민박을 겸하고 있는 치킨집도 있습니다. 주문하면 30분 걸린다고 합니다.  

마을을 지나고 북배로 가는 해안도로 입니다. 시멘트 난간에 풍도 사람들의 이야기가 쓰여 있습니다. 한글자 한글자 읽다 보면 풍도를 조금 더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레고처럼 생긴 큰 배가 평택항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배는 세계적인 자동차 물류업체인 '발레니우스 빌헤름센(wallenius wihelnsen)의 '타미시스'(tamesis)라는 자동차를 운송하는 배 라고 합니다.

배에서 내려 30분 정도를 걷다 보니 흉물스럽게 파헤쳐진 풍도의 속살이 드러난 곳이 나타납니다. 폐 채석장이라고 합니다. 사업이 끝나면 훼손된 환경을 복구해야 하는데 계속 방치를 하고 있습니다. 풍도 주민들도 이곳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복구 하라고 민원을 넣으면 채석을 하는 시늉만 내다가 얼마지 않아 가버리기를 반복한다"고 합니다.

2년전 KBS 1박2일 촬영팀이 이곳 채석장의 앞에 보이는 돌무더기 위에서 취침 복불복을 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채석장 주위에는 흉물스럽게 녹슨 가건물들과 버려진 장비들이 많습니다. 영화 세트장으로 만들면 좋을것 같기도 합니다. 

등유를 실어 날랏던 기름차도 버려진 채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채석장을 가로 질러 끝에 닿으면 나타나는 표지판입니다.

후망산에서 야생화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줄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곳이 북배로 가는 산길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봤자 5분이면 도착합니다.

선착장에서는 40분정도 거리, 채석장 끝지점 산길에서 5분 거리의 북배 입니다. 검게 그을린 바위가 첫 인사를 합니다.  북배의 유명한 불탄바위 입니다.  

 풍도 서쪽 해안에 있는 '북배'는 백패커들에게 너무나 알려진 곳입니다. 풍도의 서쪽 해안을 이루고 있는 비경으로, 붉은 바위를 뜻하는 '붉바위'에서 유래한 이름이라 유추되고 있습니다. '배'는 긴바위를 칭하는 것으로, 북배는 길게 뻗어 있는 붉은바위라는 뜻입니다. 푸른바다와 붉은 바위들이 만나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뽑내는 절경입니다. 

북배는 텐트 7동 정도 칠 공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한두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살짝 경사지이기도 합니다. 야영지로는 그다지 좋은 자리는 아니지만 위치는 훌륭합니다.

 

북배 뒤로 보이는 산은 풍도에서 가장 높은 후망산175m 입니다. 그 정상에 철탑이 보입니다. 철탑 아래로 야생화 천국이 펼쳐 집니다.

등대가 있는 조그만 바위섬이 북배딴목 이라고 합니다. 밀물때는 섬이 되고 썰물때는 풍도와 연결되는 북배딴목입니다. '딴목'에서 '딴'은 '외딴' 또는 '떨어진'의 뜻이고 '목'은 목처럼 가늘게 이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간혹 매기를 잔뜩 달고 다니는 어선이 지나갑니다. 

북배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어떨지 카메라를 올렸습니다. 짧게 짧게 셔터를 나누어 끊어서 미속촬영을 합니다.

아쉽게도 일몰이 훌륭한 북배에서 일몰을 보지 못했습니다. 구름이 해를 가립니다.

 

북배에서 촬영한 풍도앞 바다의 모습입니다. 요즘 타임랩스나 미속촬영에 궁금한 점이 많이 생겼습니다. 사진찍는것 보다는 수십배는 더 긴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얼마전에 구입한 크레모아M 입니다. 부족함 없는 밝기와 성능입니다.

오래된 저의 텐트 입니다. 두드리면 북소리가 날 정도로 팽팽해 집니다. 웬간한 바람에도 조용하게 잘 수 있습니다.

이것 저것 끓여 먹고 막걸리에 커피까지 한잔 합니다. 낮기온은 따뜻하더니 밤기온은 여전히 쌀쌀합니다. 

다음날 아침, 함께온 일행이 바위 위에 피츠로이를 올려 놓고 기념촬영을 합니다. 저도 덩달아 몇 장 찍습니다. 생각보다 분위기 있습니다.

백패킹때 사용하는 밀덕스러운 100리터 배낭입니다.

북배에서의 상쾌한 하룻밤을 보내고 마을로 내려 옵니다. 풍도에 하나밖에 없는 슈퍼는 정말 별게 없더군요. 초인종도 여간 쎄게 누르지 않으면 주인이 오지도 않습니다.

풍도에서 유명한 야생달래 입니다. 진한 향기가 끝내줍니다. 요즘 이곳 할머니들의 주 수입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사생이라고 부르는 '전호'라고 하는 산형과 식물의 어린 순입니다. 쌉싸름하니 잃었던 입맛이 돌아오는 맛있는 나물입니다. 한봉지에 5천원, 집에 있을 가족에게도 풍도의 맛을 보여주기 위해 달래와 사생이나물을 가져 갑니다. 역시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마을에서 후망산으로 오르는 길에 있는 풍도 맛집입니다.

 

풍도의 80%는 노인들이라고 합니다. 노인들이 떠나면 빈 집은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쓰러져 갑니다.

여기 저기 보이는 빈집들, 집은 사람이 자리를 비우면 금새 허물어 집니다.

 

풍도 후망산은 청일전쟁때 일본과 청나라가 아산만에서 교전할 때 청나라 군인들이 망을 보던 산이라 해 호망산이라 불렀는데 후대로 오면서 변음이 되어 '후망산'이 됐다고 합니다. 풍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해발 175m입니다. 풍도 앞바다는 청일전쟁 당시인 1894년 7월25일 1,100여 명의 청나라 병사가 탄 고승호가 일본 군함의 포탄을 맞고 가라앉은 곳으로 얼마 전까지도 후망산 꼭대기에 일본이 승리의 깃발을 꽂았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인조의 은행나무

마을에서 십분 거리의 후망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섬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만큼 크고 웅장합니다. 은행나무는 원래 소나무나 잣나무 처럼 하나의 중심줄기로 높이 자라는 침엽수 인데 이곳 은행나무는 활엽수처럼 사방팔방 가지를 뻗었습니다.

 

 

이괄이 평안도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인조는 난을 피해 풍도에 잠시 머무른 적이 있는데요, 이때 섬에 머문 기념으로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고 합니다. 인조가 심었다고 하여 어수거목이라고도 합니다. 풍도를 지키는 수호신과 같은 나무로 나무 옆에는 마을 사람들이 쉼터로 이용하는 정자가 있으며, 나무 밑에는 샘이 있습니다. 한때 이 샘은 풍도가 안산시에 편입되기 전 옹진군 140여 개 섬 가운데 물맛이 가장 좋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바닥이 보일 정도로 수량이 많지 않은것 같습니다. 
 

은행나무에서 내려다본 마을과 선착장 입니다.

 

12시가 되자 서해누리호가 선착장으로 들어 오고 있습니다. 이제 집으로 가야 합니다. 
 

오늘이 수요일인데요, 나가는 사람들 보다 색색 등산복과 커다란 카메라 가방을 메고 풍도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이번주 주말이 최고의 풍도 야생화 절정이라고 합니다. 하루쯤 더 있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지만 애써 발길을 돌려야 합니다.

 

풍도 북배에서의 텐트속 하룻밤도 더할나위 없이 좋았지만 샛노란 복수초 군락, 솜털달린 노루귀, 고고한 풍도바람꽃 그리고 풍도 대극과의 조우는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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