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선인봉, 박쥐길에서 만난 참매
족히 이삼년만에 도봉산 산행입니다. 딱히 산행이라기 보다 도봉산 선인봉 등반이라고 하는게 맞을것 같습니다. 도봉산 선인봉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개의 암벽훈련장 중에 한 곳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북한산 인수봉이죠.
오늘은 도봉산 선인봉의 많은 바윗길 가운데 선인봉을 대표하는 얼굴격인 '박쥐길'을 등반합니다. 박쥐날개 처럼 휘어져 오른 언더크랙 아래 비좁은 공간에 박쥐가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당연히 지금은 박쥐가 살지 않습니다. 어릴적만해도 어스름 해질녁이면 골목을 휘젖고 다니던 그 많고 많던 박쥐는 다 어디로 갔을까요?
한시간 정도를 오르니 석굴암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웬지 오늘은 전혀 힘이 들지 않습니다. 체력이 좋아진 걸까요? 그럴일이 없는데 신기합니다.
도봉산 석굴암은 다른 사찰도 그러하듯 일요일 점심에는 무료로 국수공양을 합니다. 국수냄새에 홀려 기웃그려 보지만 일행이 있어 발길을 돌립니다.
석굴암으로 오르는 계단 왼쪽으로 선인봉 하단으로 가는 샛길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인기 코스인 박쥐길에는 벌써 열명 이상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안전벨트와 안전모, 각종 쇠장비를 걸고 박쥐길을 올라갑니다.
박쥐길과 함께 선인봉을 대표하는 '표범길'입니다. 발목잡아먹는 귀신이 붙은 코스 이기도 합니다.
표범길 오른쪽으로 박쥐길이 보입니다. 표범길은 다소 난이도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만만한 박쥐길로만 올라가는것 같습니다.
등반을 하지 않더라도 한나절 먹고 마시고 구경하는 재미도 솔솔할것 같습니다.
박쥐날개를 지나 3피치, 낙락장송에 도착했을 때 입니다. 다음 구간을 루트 파인딩을 하다 문득 뒤를 돌아 나무를 보다보니 한 가지에 귀여운 참매가 앉아 있습니다. 거리는 불과 5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 입니다.
올해 봄에 선인봉 박쥐길을 등반한 선배의 이야기가 떠 오릅니다. "박쥐길 4피치 등반 즈음에 매 한마리가 머리위에 빙빙 돌면서 위협 비행을 하더니 손살같이 날아와 머리를 쪼고 갔다"는 한 선배의 무용담 속에 나오던 그 매가 바로 이 매인가 봅니다.
봄이면 새들이 번식하는 시기이니 부근에 어린 매가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둥지 근처로 다가가는 등반자에게 위협을 했던거구요.
매가 앉아 있는 소나무가지 옆쪽에는 하강기가 걸려 있습니다. 바위와는 꽤 거리가 있는데 신기합니다. 어떻게 저기까지 튀어 갔을까 다들 한마디씩 이야기를 해 보지만 쉽게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곰곰히 나무를 살펴보니, 생나무 가지에 청설모 둥지처럼 마른가지들이 잔뜩 올려져 있습니다. 누가 그랬을까요? 아마도 매의 소행이 아닐까요? 자신의 둥지 근처까지 왔다 갔다 하는 클라이머들이 싫어서 멀찌감히 물어다 놓았을까요?
박쥐길 4피치 종료후, 두번에 나눠 하강을 합니다.
하강 도중, 표범길 동판이 보입니다. 1967년 5월 요델산악회에서 표범길을 개척한 후 동판을 박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설악산 석주길에도 요델산악회의 동판이 있습니다.
에필로그
매는 낮에 박쥐는 밤에 먹이 활동을 하니 서로 같은 장소를 공유해도 얼마던지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봉산 선인봉의 박쥐는 집을 버렸고 그 자리에 매가 살고 있습니다.
사람의 개입이었던지 환경의 변화였던지 간에 하나의 생물종이 사라졌다는 것은 이곳의 생태가 건강하지 않다는 반증이겠죠? 클라이머들과 공존하고 있는 선인봉의 '참매'가 오래 오래 이곳에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번식기에는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 둥지 부근으로 등반하는것을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설악산 석주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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