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나무 검은색나무, 그리고 설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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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에서 만난 흑백

며칠전 설악산 소토왕골에  들어갔다가 만난 흰색나무 이야기 입니다. 설악산 소공원에서 케이블카 탑승장을 지나 쌍천교를 건너면 비룡폭포로 가는 설악산에서 가장 걷기 좋은 길 입니다. 그 초입 어디쯤에 소토왕 계곡으로 들어가는 비밀의 길이 있는데요, 정규탐방로는 아니고 사전에 국립공원관리공단에 허가를 받아야 출입이 가능한 곳입니다. 이 길에서 만난 흰색나무와 검은색나무의 이야기 입니다.

어스레한 이른 아침, 설악산 토왕폭포로 가는 작은 골짜기인 소토왕골, 울창한 이 숲길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희뿌연 나무를 만났습니다.  이 나무는 분필을 칠 해 놓은 것 처럼 껍질이 하얗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알고 있었던 흰색의 수피를 가지고 있는 나무는 자작나무만 있는줄 알았는데 새로운 나무를 발견했습니다. 이 나무는 자작나무처럼 껍질이가로로  얇게 벗겨지지는 않습니다. 껍질은 맨실맨실하며 손으로 힘주어 만지면 흰 분가루가 손에 묻어 나네요, 제가 입고 있던 검은색 바지가 금새 회색빛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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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 나무의 이름이 무엇일까요? 구석 구석을 봐도 생소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마침 꽃이 폈습니다. 총상화서를 가지고 있네요. 불현듯 몇 해 전 설악산 장군바위 아래서 본 본 귀여운 열매를 단 나무가 떠 올랐습니다. 아~ 이녀석 '사람주나무'가 아닐까... 

'사람주나무'는 아닐까? 라며 요목 조목 사진을 찍고 눈에 익혔습니다. 그리고 검색을 해 보니, 역시 제 생각이 맞았습니다. 끝이 뾰족하고 거치가 없는 달걀형 잎, 뚜렷한 입맥, 가을에 동그란 열매 세개가 합쳐진 듯한 귀여운 열매가 열리며 붉게 물드는 단풍이 아름다운 대극과 나무, 사람주나무 입니다. 다시 보니 반갑습니다.  

본래 사람주나무는 남부지방이나 가야 볼 수 있는 남부식생인데, 동해의 따뜻한 해양성 기후 덕분에  이곳 설악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백이 있으면 흑이 있는법, 검은나무 등장

이 나무는 완전히 까맣습니다. 석탄색보다 조금 덜 까만 정도죠, 떼죽나무과의 쪽동백이라는 나무입니다. 이 나무도 소토왕 계곡에 하얀 사람주나무처럼 듬성듬성 뿌리를 뻗었습니다. 까만 수피만 보면 어떤게 떼죽나무인지 쪽동백인지 알 수 없지만, 잎이나 화서, 벗겨지는 소지를 보면 이름을 알 수 있기도 합니다.  

쪽동백나무는 새까만피부를 가지고 있지만 5월에 피는 꽃은 '스노우벨'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넓은 활엽수종인 쪽동백나무, 강원도에서는 귀한 동백기름을 대신했던 '쪽동백', 쪽이라는 어원은 '못한, 덜한, 작은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양반님네들의 나무가 동백이라면 쪽동백은 촌민들의 나무인 셈입니다. 

떼죽나무와 쪽동백을 구별하는 동정포인트, 작년에 난 소지의 껍질이 벗겨지면 쪽동백 입니다. 혹자는 껍질이 쪽~하고 벗겨진다고 쪽동백이라고도 부른다고 하더군요.

설악산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전지역

설악산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나무들은 참나무과의 신갈, 졸참나무와 당단풍나무, 오래된 숲에서만 볼 수 있는 서어나무 같은 활엽수와 소나무, 잣나무, 분비나무같은 침엽수종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금강배나무와 금강봄맞이, 금강소나무, 등대시호, 만리화, 설악눈주목, 설악금강초롱, 솜다리(에델바이스) 같은 특산식물과 눈측백, 노랑만병초, 난쟁이붓꽃, 난사초, 한계령풀 같은 희귀식물이 자생하는 곳이며, 유네스코가 지정한 국내 최초의 생물권보전지역이기도 합니다.

흰나무 검은나무 이야기 하면서 결국에는 설악산이 가지고 있는 생물다양성까지 흘러 버렸습니다.  이렇게 설악산은 매우 높은 보존 가치를 지니고 있는 산입니다. 지금 이 산이, 산등성이가, 산꼭대기가 몇몇 이익을 위해 콘크리트 기둥과 쇠난간에 강철 와이어가 이어지는 관광지가 되려고 합니다. 말 못하는 나무도 흑과 백이 있는데 사람이라고 흑과 백이 없을까요? 이쪽의 생각도 이해가 되고 저쪽의 이야기도 맞습니다. 

흑과 백은 다른 모습이지만 결코 둘이 아닙니다. 흑이 없으면 백이 없고 백이 없으면 흑 또한 의미가 있을까요? 흑과 백이 대립할 때는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이치 처럼 그대로 남겨두는게 가장 좋지 않을까요?  판단은 우리들의 후손들에게 넘겨 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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