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한편의 시를 위한길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세상 어디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길이 또 있을까? 설악산의 비경을 감춘 소토왕골의 천길 벼랑에 넋을 잃을 만큼 짜릿하고 황홀한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이 있습니다.
이 바윗길은 경원대산악회가 개척한 길로 안정장비를 갖추고 몸에는 질긴 밧줄을 묶어 양손과 양다리로 올라야 하는 아찔한 길입니다.
사진 가운데 높은 봉우리가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이 있는 설악산 노적봉입니다.
설악산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은 설악산 소공원에서 비룡교를 지나 오른쪽 숲 속에서 시작되며 정상인 노적봉까지는 모두 10개의 피치로 등반력과 등반수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게 5시간 이상이 걸리는 코스입니다. 설악산에 개척된 다른 바윗길에 비해 난이도는 쎄지 않지만, 피치가 길고 고도감이 높아 초보자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길이기도 합니다.
한편의 시를 위한 길, 등반
비룡교를 지나 얼마지 않아 오른쪽 통제구간으로 들어가서 좁은 계곡을 건너면 한편의 시를 위한 길은 시작됩니다. 안전벨트와 헬멧 퀵드로우 하강기 캠 같은 장비를 챙기고 60미터 자일을 풀어 하네스에 단단하게 역팔자로 매듧한 선등자가 첫 스타트를 합니다. 아침 일찍 시작한 등반은 초입부터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파른 바윗길과 함께 시작됐습니다.
낙타의 혹처럼 생긴 아슬아슬한 리지구간이 이어지다 어느샌가 흙길이 나타나기를 몇 차례, 한 피치 두 피치 아슬아슬하게 떨어져 내려간 소토왕골의 비경이 황홀하다 못해 눈부실 정도입니다. 뒤로는 울산바위와 신흥사, 케이블카와 설악산 소공원 일대가 내려다 보입니다.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은 총 10피치 코스이지만 등반수와 후등자들의 등반력을 감안해 8~9피치로 자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편의 시를 위한 길이 있는 노적봉은 등산객들이나 일반인들에게 출입이 제한된 구역이기 때문에 사전에 암벽 등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아찔한 길 위에서 시선을 등 뒤로 돌리면 문화재관람료로 어마어마한 현금을 벌어들이는 설악산 신흥사의 모습과 주변 소공원의 모습이 한눈에 보입니다.
바위틈 속에서 반가운 녀석을 만났습니다. 몇 년 전에 석주길을 함께 등반했던 로컬들이 연 잎을 닮은 이 풀을 보고 삼지구엽초라고 하면서 뜯어 가더군요. 삼지구엽초의 모습과는 뭔가 달라서 알아보니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인 연잎꿩의 다리라고 합니다. 멸종위기니 조심조심 피해 가야 합니다.
단단한 바위를 깨고 자란 소나무입니다. 저 바위를 깨고 지금의 몸을 키우기까지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시련을 겪었을까요?
한 피치를 넘고 나면 또 한 피치가 나타나고 이런 칼날 능선을 여닐곱번 넘고 나면 비로소 노적봉의 위용이 나타납니다.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오른편 아래에 칠성봉에서 흘러내리는 가파른 계곡이 소토왕골로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계속된 가뭄으로 물이 지나간 듯한 자욱만 남아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가을의 모습입니다.
오래전, 좋은 사람들과 처음으로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을 등반하면서 찍었던 소토왕골의 단풍 사진입니다.
한 무리의 새 떼가 소토왕골의 단풍 사이로 날아가는 풍경이 이색적입니다.
설악산에서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노적봉 바위 능선의 움푹한 하단부에 멋진 자태를 한 붉은색 금강소나무의 모습에 한동안 넉을 놓고 쳐다봅니다.
노적봉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은 어렵지 않은 난이도의 코스지만 물리적으로 긴 피치와 고도감까지 더해져 초보자들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운 길이기도 합니다.
알프스의 에델바이스와 비슷한 한국의 에델바이스, 솜다리입니다. 한라산과 오대산, 설악산 금강산 등 중부이북 1,500m 이상의 척박한 바위틈에서 주로 자생하는 한국 특산종의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입니다. 개화기는 7~8월입니다. 솜다리꽃은 한국산악회의 상징으로 산악인을 상징하는 꽃이기도 합니다.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의 최종 목적지인 노적봉 정상에 가까워지면 맞은편 봉화대와 그 아래로 권금성 케이블카역 승하차장이 보입니다.
권금성에서 보면 노적봉을 오르는 등반자들이 개미보다 더 작은 모습이거나,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지만, 노적봉에서는 권금성의 케이블카나 탑승장의 사람들 까지 너무나 잘 보입니다.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은 설악산 토왕골과 소토왕골 사이, 날카롭게 솟은 노적봉에서 북서쪽으로 뻗어내렸습니다.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가운데 가장 크럭스를 올라 쌍볼트에 도착하기 직전, 여기서 노적봉의 허리를 돌아한 피치만 더 가면 등반은 끝이 납니다.
정상을 찍고 슬링을 잡고 하산하는 절벽 뒤로 토왕성좌골과 토왕성폭포가 보입니다. 폭포를 따라 떨어지는 물은 말라 버렸고 시커먼 자욱만 남아 있습니다.
2015년 겨울, 비룡폭포 우측 상단에 토왕성폭포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를 설치했지만, 그곳에서 보는 토왕성의 모습보다 족히 천배는 더 멋진 전망대가 바로 이곳 노적봉입니다.
몇 차례의 하강과 바위구간을 걸어 내려오면 너덜지대의 소토왕골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등반장비를 모두 배낭에 쑤셔 넣으면 사실상 등반은 끝입니다. 이제부터 한 시간 정도의 원점 회귀 트래킹이 시작됩니다.
소토왕골 생태트래킹
철컹철컹 무거운 쇠장비들과 골반을 죄고 있던 안전벨트를 벗어 배낭에 쑤셔 넣고 높은 절벽 위에서 내려다봤던 소토왕골의 속살로 한걸음 한걸음 들어갑니다. 저는 이 길이 세 번째라서 대략적인 느낌이나 주변 환경을 알지만 오늘이 처음인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특별한 경험일까요.
동네에 피는 목련은 이른 봄에 일년 농사를 끝냈지만, 산에 자라는 산목련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됩니다. 정명은 함박꽃나무, 산목련 또는북한에서는 목란이라고 부르는 북한의 국화이기도 합니다.
둥글게 말려 올라가는 꽃잎이 특이한 박쥐나무 꽃입니다. 나뭇잎이 박쥐날개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이른봄에 피는 조팝나무와 달리 좀조팝나무는 지금이 제 철입니다.
사람주나무도 꽃을 피웠습니다.
단풍잎도 가뭄으로 가장자리부터 말라 버렸습니다.
다래덩굴입니다.
유독 다래들의 기세가 강한 숲에 들어오면 이내 비룡폭포로 들어가는 넓은 등산로가 나타나면서 새벽부터 시작된 고단하고 뿌듯한 설악산 등반이 끝이 납니다. 언제 다시 또 이 길을 오게 될까 하는 기약 없는 생각을 하며 헛헛한 걸음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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