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금강산, 지금 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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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1만 2천봉의 첫 봉, 한국에서 갈 수 있는 금강산

오늘은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를 거쳐 중국과 만주벌판을 지나 백두산까지 뻗은 산맥이 한반도의 등뼈를 따라 금강산으로 설악과 태백과 소백을 지나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이라 불리는 한반도의 가장 긴 산줄기, 그 한가운데 있는 금강산으로 갑니다.

금강산은 오래전 금강산관광이 시작되고 얼마지 않아 동해에서 배를 타고 갔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겨울 온정리 노천온천에서 금강산을 바라보며 온천욕을 했었고, 삼일포며 금강산 상팔담과 구룡폭포까지 빙판길을 아이젠도 없이 아슬아슬하게 올랐던 기억들이 세세히 남아 있습니다.

그랬던 금강산을 지금처럼 남북교류가 꽝꽝 얼어붙은 시국에 어떻게 갈 수 있냐고 하겠죠?  그런데 금강산의 시작이자 끝인, 강원도 고성의 신선대는 한국전쟁 이전까지만해도 북한의 영토였지만, 전쟁 이후 수복되어 누구던지 갈 수 있는 한국영토가 됐습니다.  

미시령에서 치켜올린 금강산의 신선대는 신선봉과 삼봉, 칠절봉, 둥글봉, 향로봉에서 휴전선을 넘어 금강산의 최고봉인 비로봉까지 이어집니다. 우리나라에도 금강산1만2천 봉우리 가운데 다섯 봉우리가 있는 거죠. 그런데 신선봉을 제외한 나머지 봉우리는 군사지역이어서 민간인 출입이 안되며 신선봉 또한 자연휴식년제로 현재는 통제되어 있는 상태 입니다. 아쉽지만 금강산에서 갈 수 있는 곳은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신선대가 유일 합니다.    

금강산 신선봉은 출입통제구간이지만 그 아래 능선인 신선대(성인대)까지는 금강산 화암사에서 출발하면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등산로가 나 있습니다.  

금강산 신선봉과 설악산 울산바위, 동해의 푸른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곳

금강산 성인대(신선대)는 화암사에서 시작됩니다. 주차장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1km가다 보면 금강산 화암사 입구 기념품가게가 나오고 왼편 산길을 따라 등산로가 이어집니다.  화엄사 주차장-화엄사 상점-수바위-시루떡바위-신선대(성인대)-화암골-화암사-주차장까지 총 4.1km, 넉넉히 2시간 코스의 순환코스 입니다. 화암사에서 출발해 수바위를 지나 신선대에 오르면 울산바위의 위용을 발 아래로 볼 수 있으며 설악산 골골 능선과 속초시, 동해의 푸른 바다가 한꺼번에 펼쳐지는 최고의 걷기 코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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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1만2천봉, 8만 9암자 중에 첫 번째 암자 '화암사'

금강산 최남단의 사찰로 화암사에서 부터 금강산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금강산 화암사로 들어가는 일주문인데 보조 기둥이 두개씩 떠 받치고 있으니 삼주문이라고 해야 할까요?

일주문을 지나면 큰 스님들의 부도석 15기가 남아 있습니다.  

금강산 성인대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와 어마어마한 조망 덕분에 백패커들의 숙영지로도 유명합니다.  

화암사는 768년 진표율사가 처음 건물을 짓고 화엄사라고 했습니다. 화엄사라는 이름은 화엄경을 소장한 절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엄할엄()에서 뫼산 자가 붙어 바위암(巖)을 쓰는 '화암사'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화엄사였던 절이 '화암사'가 된 이유는 절 바로 위에 있는 수바위의 전설 때문인데요,  어느날 화엄사에서 정진하던 두 스님의 꿈 속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절 위에 있는 바위에 작은 구멍이 하나 있으니 지팡이를 넣고 세번 흔들면 끼니때 마다 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쌀이 나올 것이다."라고 합니다. 스님은 바위로 올라가 꿈속에 나온 그 구멍에 지팡이를 넣고 흔드니 정말 두사람이 먹을 양의 쌀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절에 온 객승이 이 일을 보고는 '여섯 번 흔들면 네 사람분의 쌀이 나올것'이라며 구멍에 지팡이를 넣고 흔들었더니 바위는 쌀을 삼키고 피를 토했다고 합니다. 그 때부터 이 바위의 이름이 쌀바위란 뜻으로 쌀 수자를 써서 '수암'이라고 불렀고, 절의 이름도 '쌀바위 절' 이란 의미의 벼 '화' 자와 바위 '암'자를 써서 '화암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쌀바위 '수암' 

화암사 입구 상점 왼쪽에서 부터 등산로가 시작되는데 시작부터 경사가 상당합니다.

쌀바위에서 내려다 본 화암사 경내

바위가 빼어나다고 해서, 또는 바위 위에 웅덩이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수바위'를 넘어서자 세찬 북서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가파른 능선길이 시작됩니다. 

시루떡 바위라고 합니다. 

완만한 오르막을 30분 정도 오르다 하늘이 터지는 곳에 사람들의 소리가 들립니다. 이곳이 신선대 입니다. 제법 모양새 있는 바위가 우뚝 솠아 있습니다. 이 봉우리는 미시령보다도 낮은 해발 645미터 이지만, 조망은 탁월합니다. 북설악의 전경과 신선봉과 금강산의 산자락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발 아래로 수바위와 화암사, 고성의 동해바다가 한눈에 잡힙니다. 

신선대(성인대)는 설악의 울산바위와 금강의 성인봉 사이에 자리하고 있어 속초와 고성을 모두 볼 수 있는 훌륭한 조망터 입니다. 

신선대에서 울산바위가 보이는 쪽으로 10여분 더 가면 조망은 더욱 끝내줍니다. 거대한 너럭바위를 지나면 미시령 옛길과 새로난 미시령 쌍굴, 그리고 웅장하게 펼쳐진 울산바위의 위용이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황철봉에서 이어진 능선이 미시령을 넘어 금강산 신선봉과 만납니다.   

구름 한 점 없는 시린 하늘에 바람은 세찼으며 바위에 고인 물은 땡땡하게 얼어 있습니다. 

울산바위를 조망하기 좋은 곳인데, 지금은 역광이어서 사진이 별로 입니다. 오후 3시 이후가 가장 잘 보이며 사진찍기 좋은 시간 입니다. 

미시령 쌍굴과 미시령옛길이 까마득히 발 아래로 내려다 보입니다.

유명한 낙타바위 입니다. 낙타처럼 생겼나요?

시간이 만들어낸 작품 입니다.

한 가닥의 거침도 없이 속초시내와 동해바다가 조망됩니다. 

금강산 첫 봉우리 아래에서 울산바위의 전설을 생각해 봅니다. 조물주가 금강산을 만들면서 전국의 아름다운 바위들을 불러 모았는데 울산에 있던 울산바위도 금강산에 가기위해 부지런히 길을 나섰지만, 금강산을 눈앞에 두고 금강산 일만이천봉이 모두 완성됐다는 소식에 실망해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이야기죠.

미시령만 넘으면 금강산이 시작되는데 금강산을 코앞에 두고 꿈을 이루지 못한 울산바위의 애절한 마음은 어땠을까요? 금강산을 바라보며 주저앉은 울산바위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 애처롭습니다.

한편, 울산광역시는 매년 수백만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설악산의 명소가 된 울산바위를 반환하라며 속초시에 '울산바위 반환청구소송'을 제기 했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천년고찰 화암사, 금강산 팔만구암자 중, 첫 암자

성인대에서 화암골을 따라 한시간 정도 하산하면 산행이 끝나면서 화암사로 들어가는 돌다리가 나타납니다.  

새로 놓인 돌다리 아래에는 그 옛날 수도자들이 건넜던 돌다리의 교각과 판석 두장만 남아 있습니다.

두개의 판석으로 이어진 돌다리가 왠지 걸어보고 싶게 만듭니다. 

769년 창건되어 1623년 소실 후 여러차례 중건과 소실이 거듭되다. 한국전쟁으로 다시 소실되고 법당만 지었다가 1991년 지금의 모습으로 중건됐다고 합니다.  

1991년 새로 만들어진 화엄사 본전인 대웅전 입니다.

석가모니 고행 상

29세에 출가한 싯다르타는 구도자 보살로서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행의 삶이었다. 극도의 고행으로서 '위없는 깨달음'(무상보리)를 얻으려 무진 애를 썻다. 그러나 6년의 갖은 고행이 최상의 깨달음이 아님을 알아차리고 6년간 금식고행의 수행생활을 청산하고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으로 기운을 차리게 된다. 

이렇게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을 드신 보살은 넓은 그늘을 드리운 핏팔라나무

(PiPala

보리수)에 이르러 주위를 세 바퀴 돈 뒤 길상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솟띠아로부터 길상초를 받아 반석 위에 고르게 펴서 깔고 동쪽을 향해 몸을 바르게 세우고 호흡을 고른 후 보살은 맹세햇다. 

"여기 이 자리에서 내 몸은 메말라 가죽과 뼈와 살이 다 없어져도 좋다. 저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이 자리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

갖은 마라(악마)의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깊은 명상에 들어, 칠 일째 동쪽의 새벽녘 샛별을 보고 드디어 보살은 모든 미혹의 번뇌를 일순간에 다 끊어버릴 '아뇩다라 삼막삼보리' 무상보리의 정각을 이루었다. 태자 나이 35세 때 12월 8일의 일이었다. 

49일간 선정에 든 후 "내 이제 감로의 문을 여나니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낡은 믿음을 버리고 ... "함께 고행을 닦았던 아야교진여 등 다섯 비구에게 처음으로 가르침을 설하는데 이를 초전법륜이라 하며 이들은 석가모니의 첫 제자가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꿈에도 그리운 금강산, 그 자락을 오르며 멀리 비로봉까지 한걸음에 내 달려 보는 상상도 해 봅니다. 철조망이 걷히고 남과 북이 하나 되는 날, 이 길을 따라 백두산까지 갈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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