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산장, 기로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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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첫 산장, 북한산 백운산장

산악인들의 요람, 인수봉 아래 북한산 경찰구조대를 지나 30분 정도 깔딱고개를 오르면 통나무로 만든 근사한 산장이 나타납니다.  이 산장은 올해로 93살의 나이를 먹은 대한민국 첫 번째 산장인 백운산장인데요, 마당에 묵직한 통나무 테이블이 예닐곱개 있어 백운대를 오르는 등산객들이 마지막으로 다리쉼을 하는 장소이자 도란도란 모여 도시락을 펼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산할때는 구수한 멸치국물에 말아 먹는 잔치국수와 두부김치에 막걸리 한 잔의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통나무로 지어진 백운산장 이층은  인수봉을 등반하는 클라이머들의 베이스캠프이기도 하죠. 

이런 백운산장이 지금은 잔치국수도 두부김치도 사라지고 '백운산장 국가귀속반대'라는 플랭카드와 서명대가 놓여져 있습니다.          

잔치국수가 사라진 백운산장 할머니는 하릴없이 손을 놓고 있습니다. 

존폐기로에 선 백운산장

백운산장이 '국가귀속'이라는 절명의 상황을 맞게된 것은 지금부터 20년 전, 국립공원관리공단과 한 기부채납 약정에 있습니다. 1992년 백운산장에 화재가 나자, 산장을 증축하는 과정에서 국립공원관리공단은 20년 후, 백운산장을 국가에 기부채납 한다는 조건으로 건축허가를 내줬습니다. 백운산장은 국가소유의 땅에 지은 산장으로 증개축을 할 시에는 소유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죠.

1997년 백운산장의 증축이 완료된 후 20년이 지난, 2017년 5월 23일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백운산장을 국가시설로 귀속하겠다며 백운산장에 통보합니다.  

하지만 백운산장의 산장지기인 이영구(86) 할아버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약정한 일방적인 계약이었다며 억울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에 산악인들도 대책위를 꾸려 백운산장을 보존하고 등록 문화재 지정을 요구하며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섭니다.  

결국 산악인들의 요구로 백운산장을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는 방향으로 결정되기는 했지만, 백운산장 할아버지,할머니의 퇴거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변기태 산서회 회장은 국립공원관리공단에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백운산장을 사이에 두고 산악단체들과 국립공원관리공단과의 법정 다툼이 시작되었습니다.  

얼마전 문제인 후보와 친분이 있는 산악인이자 시인인 권경업씨와 몇몇 산악인들이  문제인 대통령 후보 시절, 백운산장 이야기를 전했다고도 합니다. 대화와 타협으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국립공원관리공단도 행정집행 같은 강경책을 포기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입니다.   

백운산장 안에는 국가귀속을 반대하는 서명지가 놓여 있습니다.

백운산장의 안주인인 김금자 할머니, "요즘 다른 등산로에 교통이 좋아져서 교통이 불편한 우이동 등산로를 오르는 사람들이 예전에 비해 3/4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또한 업친데 덮친격으로 '퇴거'라는 압박까지 더해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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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장은 90년간 한국 등산역사의 산실이자. 1971년 7명이 숨진 인수봉 참사 때는 구조본부 역할을 하는 등, 북한산 내 조난사고의 대피처로도 활용됐습니다. 

오래간만에 백운산장에 왔더니 고양이 대신 강아지가 살고 있습니다. 이제 일년된 이름이 '누렁이'라는 숫개 입니다.

얼마나 많은 등산객들에게 손을 탓는지 옆에서 만져도 별다른 반응도 없습니다.

소란스런 와중에 잠도 잘 잡니다. 어쩌면 백운산장에서 사는 방법이 눈감고 귀닫고 살아야 된다는 것을 진즉에 깨우친건 아닐까 합니다. 

배에 덜렁 대는 젖무덤을 한 아름 달고 등산객들 눈치보랴 뭐라도 하나 얻어 먹으랴, 테이블 사이를 배회하는 암캐도 있습니다.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니 '들개'라고 합니다. 구조대 근처에 새끼를 낳았는데 할아버지가 불쌍해서 밥을 주니 계속 온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들은 예전에 찍었던 백운산장의 모습 입니다.   

원래 백운산장은 들고양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습니다.

2004년 까지만 해도 백운산장 우물에서 물을 길러 먹기도 했습니다. 언제쯤 다시 저 우물물을 먹을 수 있을까요? 

눈덮힌 백운산장의 모습 입니다.

백운산장에는 산장지기 할아버지와 할머니만 계신게 아닙니다. 산장에서 판매하는 생수와 음료에서 생필품까지 산장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오로지 두 발로 지고 나르는 지게꾼도 한 식구나 마찬가지 입니다.  

"1983년 경남 진주에서 서울에 처음 와서 한 일이 백운산장으로 연탄을 나르는 일 이었다.  중간에 들락날락했지만, 횟수로는 34년째다. 산장에서 전화만 오면 한번도 빵구 안내고 밤이고 낮이고 짐을 날랐다. 북한산은 나에겐 천국이며 지게지는 일은 수행이자 기쁨이다."

 

백운산장과 일생을 함께한 짐꾼 

올해 63살 양띠,   한창때는 50kg를 지고 하루에 10번까지 날라봤다고 하신다. 도선사광장에서 백운대까지 50kg 지게를 지고 52분만에 오르곤 했다고 무용담 처럼 이야기를 하신다. 하루에 10번이면 20시간 동안 잠도 안자고 산을 올라야 한다. 이 것을 3번이나 해 봤다고 하신다. "한번 하면 서운하니깐. 세번은 해봐야 하지 않겠나 해서 세번이나 해봤다."...

 

백운산장에 30년 동안 짐꾼을 하셨는데, 산장이 관리공단으로 귀속되면 할아버지 할머니 처럼 산장을 떠나야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여쭤봤습니다.

지게를 지고 올라가는 일이 본인에게 희열을 느끼는 수련의 과정이자 도를 닦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순수한 일자리이자 평생의 직업으로 삼고 싶은 일이 사라지게 되는것이다.

 

오늘도 두번 갔다 왔는데, 가도 되고 안가도 되고 자유를 최대한 누리고 있다. 하루에 열번까지 지게를 져 봤는데, 지금은 굴러가도 간다. 오늘은 사람들도 많고 분위기도 좋아 도선사 광장에 앉아 혼자 즐기고 있다. 이곳이 나한테는 천국이다. 

평생을 백운산장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짐꾼과 뭇 생명들, 이곳이 그들에게는 삶의 터전 이자 천국입니다. 북한산 백운산장 문제가 발전적으로 해결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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