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간 마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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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마장터 탐방기

11월의 둘째주, 만산홍엽은 이미 끝난지 오래고 그렇다고 백설의 눈이 온 겨울도 아니어서 일년중 이 맘때가 가장 어중간 하고 등산의 맛이 적은 시기입니다. 대신 그만큼 등산객들이 적어서 한산하고 고즈넉한 산행을 즐 길 수 있기도 합니다. 조용히 산길을 걷고 싶다면 지금이 제철인 셈이죠. 

오늘은 인제군 북면의 깊은 숲 속으로 가려 합니다. 이 곳에는 왠지 기분나쁜 어감의 '마장터'와 또 왠지 기분 좋고 달콤한 어감의 '새이령'이라는 지명이 나란히 있는 장소 입니다. 새이령은 지리산에서 북진한 백두대간의 우리나라 마지막 구간으로 미시령과 진부령 그 사이를 넘어가는 길 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샛령, 새이령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마장터는 새이령을 넘어 오고 가는 사람들의 주막이 있던 곳이자 물물교환이 이루어 졌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미시령 옛길과 진부령길이 포장되기 전 만해도 새이령은 영동의 해산물과 영서지방의 감자나 콩 같은 농작물의 교환이 이루어지던 고갯길이었습니다. 

백패킹의 성지 마장터

등짐을 가득 지고 생계를 위해 오가던 이 길이 지금은 지게 대신에 커다란 박배낭에 하룻밤 힐링을 위해 오르는 백패커들의 성지가 됐습니다. 

십여년전 한 산악잡지에 소개된 이후로 알려지기 시작하다, 백패킹 붐을 타고 오지의 세상을 동경하는 백패커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다시 알려지게 된 길 입니다. 지금은 백패커 뿐만아니라 가벼운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찾아 오는 곳이 됐습니다. 

또한 취사야영 행위가 금지된 국립공원을 살짝 벗어나 있는 위치적 잇점과 전화가 터지지 않는 오지라는 점도 한 몫 했습니다. 몇년째 마장터로의 백패킹을 머릿속에만 그려오다 이번에 사전답사를 겸해 오랫동안 함께 해 온 '즐산' 멤버들과 마장터와 새이령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아홉살난 우리 아이도 동행했습니다. 

아이와 함께한 마장터 트래킹

마장터는 인제 용대삼거리에서 미시령으로 가다 보면 박달나무 쉼터라는 곳에서 시작됩니다. 이 길은 동북쪽 계곡길을 따라 창암, 소간령, 마장터, 단풍계곡, 흘리, 새이령(대간령)의 6km 거리로 , 원점회귀를 하면 왕복 12km가 되는 거리 입니다. 90% 정도가 평지나 다름없어서 아이들도 넉넉히 4~5시간만에 갔다 올 수 있는 길 입니다. 

계곡을 이리 저리 건너면서 이어지는 새이령길은 겨울을 앞 둔 갈수기임에도 골짜기 마다 촉촉한 물길들이 흘러내려와 졸졸졸 소리마저 정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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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나무쉼터 입니다. 영업은 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차가 들어올 때면 아저씨가 나와 1대당 5천원의 주차료를 받습니다.

너른 소나무 마당을 가로질러 새이령길로 들어갑니다.

길을 따라 백여미터 정도 가면 산림청에서 붙여 놓은 '마장터 가시는길'이라는 공손한 표지판이 나오는데, 사실 말 만 공손했지 정확히 어디로 가시라고 하는지 몰라 잠깐 헤매기도 했습니다. 표지판을 자세히 보면 빨갛게 왼쪽으로 화살표가 그려져 있습니다. 보일리가 만무하죠.    

빨갛고 조막만한 화살표를 따라 가면 넓은 계곡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초행길이면 이 길이 맞나 싶을 정도 이지만 유심히 보면 징검다리처럼 개울을 건널 수 있습니다.

개울을 건너 화생방 교장인 창암을 지나면 본격적인 계곡길이 나타납니다. 올긋불긋 낙엽들이 모두 골짜기로 모인 덕분에 물길인지 낙엽길인지 잘 보고 디뎌야 합니다.  

한 무리의 백패커들이 휙 하니 지나갑니다. 저 큰 배낭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마장터로 가는 길은 인근 부대의 산악 구보 코스 인가 봅니다.

왜 박달나무쉼터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알 것 같더군요. 골짜기를 따라 이렇게 큰 둥치의 박달나무들이 보입니다.  

조심조심 구간도 나타납니다. 지금처럼 낙엽이 땅을 덮는 시기에는 발디딤을 특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정신 없이 가다 보면 넘어지거나 빠질수 있습니다.

첫번째 쉼터인 샘터 입니다. 졸졸졸 흐르는 맑은 물이 시원하진 않아도 깔끔한 맛입니다.

아이도 한 사발 합니다.

샘터를 지나면 얼마지 않아 고갯마루가 나타납니다. 작은 새이령이라고 불리는 소간령입니다. 새이령은 대간령이라고 합니다.

소간령에는 커다란 고로쇠나무 아래 차려진 신당이 보입니다.

굴피집으로 만든 신당은 굴참나무와 상수리나무 껍질로 이었습니다. 

소간령을 넘어서는 하늘까지 뻗은 낙엽송 군락이 나타납니다. 낙엽송 군락은 1970년대 까지 화전민 부락이 있었던 곳으로 화전민들이 쫒겨 난 후 그 자리에 심어진 나무들 입니다. 

서어나무, 졸참나무, 고로쇠나무, 단풍나무,잣나무들이 자생하는 천연의 오지 숲속에 낙엽송 인공 조림지가 나오니 사실 그리 달갑지는 않았지만 함께 한 사람들은 너무 아름답다며 감탄을 합니다.   

우리나라 산에서 인공조림된 나무들 중에서 낙엽송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 하는데, 그 이유는 길쭉길쭉하게 빨리 자라 목재로서의 경제성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낙엽송은 단단하고 결이 세서 잘 갈라지기 때문에 광산의 갱목이나 전봇대로 주로 쓰였는데 지금은 나무 전봇대를 쓰지 않으니 애물딴지가 되버렸습니다.  

하늘위로 쭉쭉 뻗은 낙엽송과 그 사이로 좁게 난 길이 이쁘긴 합니다.

인공조림된 낙엽송은 계속해서 인간의 손길이 가지 않으면 그들 스스로 자손을 번창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낙엽송은 극양수이기 때문에 그 아래에는 그 어떤 나무도 자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간벌된 낙엽송 그루터기에 자란 어린 잣나무, 잣나무는 그나마 음수이기 때문에 싹을 티울 수 있었습니다.

억새가 나오고 줄기가 초록인 죽단화가 드문 드문 보이더니 마장터에 도착합니다. 마장터 한쪽의 울타리에 붙은 출입금지 푯말입니다.

출입금지 푯말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니 너른 마당과 그럴싸 하게 지은 통나무집이 나타납니다.

톱밥을 덮은 깔끔한 화장실도 있다고 하니 여자분들은 이용을 해도 좋을것 같습니다.

다시 낙엽송군락을 지나갑니다. 과거에는 마장터에만 30가구의 주민들이 살았다고 합니다.

낙엽송은 낙엽지는 소나무라는 뜻 인데요, 낙엽송의 바늘잎들이 길 위에 쌓여 융단위를 걷는 듯 포근 합니다.

흘리(구 알프스)로 가는 이정표가 보입니다. 흘리는 지금은 폐쇄된 진부령 알프스 스키장으로 가는 길 입니다.

골짜기 주변에는 한국전쟁 전사자 유골 발굴을 위해 당시 참호가 있던 곳을 표시해 놓았습니다.

또 한 무리의 박배낭을 맨 백패커들이 휘리릭 지나갑니다.

계곡을 건너 너른 박지에 작은 텐트와 한밤을 신나게 보낼 쉘터가 세팅되어 있습니다.

돌다리를 몇 차례 건너다 한쪽 발은 물에 빠지기도 하더니 이내 잘도 건너 갑니다. 

이제 돌다리 건너기 선수가 된 듯 합니다.

의자가 된 물푸레 나무에 앉아 보기도 합니다.

양지바른 곳에는 고사리류들이 여전히 푸릇푸릇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십여분 비탈을 올라 가면 오늘의 목적지인 새이령이 나타납니다.

드디어 새이령, 샛려, 대간령에 도착합니다. 산양과 담비, 수달이 사는 핵심 보호구간이라고 합니다. 오른쪽은 마산봉, 왼쪽은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기도 합니다.

 

오래전, 지금은 폐쇄된 미시령 옛길 휴게소에서 너덜너덜한 신선봉을 지나 지금 서 있는 이곳을 거쳐 마산봉으로 알프스 스키장에서 백두대간의 남한 종점이자 기점인 진부령까지 갔었던 기억이 떠 오릅니다.

산 아래로 이어지는 진부령과 푸른 동해바다가 조망됩니다.

오고가며 하나씩 던졌던 돌들이 탑이 됐습니다.

배낭에서 꺼낸 간식

이왕이면 대간령을 넘어 고성까지 가고 싶었으나 차량회수를 위해 원점회귀 합니다.

소간령을 다시 돌아 내려 오니 해가 뉘엇뉘엇 져물어 옵니다.  

철모르는 산철쭉도 보고

유리산누에나방 고치도 만나고

다시 박달나무 큰 몸에 기대보고

무릎까지 빠지는 낙옆속에 파묻혀 보기도 합니다.

붉은머리 오목눈이의 빈 집도 들춰보고

아침에 올랐던 박달나무쉼터로 돌아 나옵니다. 소나무 뒤로 우뚝 솟은 바위가 '창암' 또는 '공암'이라는 바위 입니다. 바위에 큰 구멍이 뚫렸다고 합니다. 

왕복 12km, 아홉살 아이와 천천히 5시간을 걸었습니다. 걷는내내 우리 꼬마가 이렇게 잘 걷다니 속으로 깜짝깜짝 놀랍니다. 북한산을 업고 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만큼 자라 아빠와 함께 산행까지 하다니 대견합니다. 

마장터, 새이령길 '아쉬움이 하나도 없는 날!'

마장터로 새이령으로 올라 갈 때만 해도 한달만 일찍, 아니 보름만 일찍 왔었더라면 정말 환상을 봤을지도 모르겠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마장터로 창암으로 박달나무쉼터로 돌아나오면서 "아쉬움이 하나도 없는 날!"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계절은 쓰산했지만 정말 더할나위 없는 하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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