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열매
오늘 아침 언제나 아파트 입구를 지키고 있는 주목에서 빨간 열매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눈여겨보지도 않았는데 주목 열매는 올해도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주목 열매가 열리는 매년 이맘때만 주목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주목은 사시사철 변하지 않는 상록침엽수로 언제나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으니 특별히 눈에 잘 띄지 않기도 합니다.
늘 푸른 나무, 주목에 빨간 열매가 달릴 때면 오며 가며 하나씩 따 먹어 보곤 합니다. 말랑말랑한 주목 열매를 입에 넣으면 달큰한 과즙이 입안에 터집니다. 그런데 과육보다 더 커다란 씨가 가운데 박혀 있어서 열매로서의 가치는 별로인 것 같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주목
주목 열매의 씨는 맛이 쓰기도 해서 먹지도 않지만, 그 속에 택세인 Taxane이라는 독이 들어 있어서 식용을 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택세인은 체내 세포에서 세포 소기관의 활동을 정지시켜 미토콘드리아를 움직이지 못하게 해 세포가 죽게 된다고 하는데 고대 로마시대에는 이 독을 화살촉에 바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반대로 주목의 잎이나 줄기에서 추출한 탁솔(taxol) 은 인류의 최대 난적 '암'과 싸울 수 있는 약으로 유방암, 난소암, 위암, 폐암 등 여러 암종에서 암세포의 무한 증식을 억제하는 뛰어난 효과를 보이며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처방되는 항암제 중 하나라고 합니다.
주목은 타고난 전략가
주목은 타고난 전략가 이기도 합니다. 꽃가루받이를 위한 전략, 방어 전략, 그리고 씨앗을 멀리 퍼트리는 번식 전략까지 자신과 같은 DNA를 퍼트리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짜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의 존재이유이기도 합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주목은 자신의 자식들을 멀리 보내기 위해 새들의 힘을 빌리기로 합니다. 후각이 없는 대신 시각이 뛰어난 새들을 위해 냄새가 없는 대신 빨간색 열매를 만들었습니다. 빨간색은 초록색의 보색으로 새들의 눈에 더욱 잘 보이게 하기 위함입니다.
말랑말랑한 주목 열매를 따먹은 새들은 과육은 소화시키고 딱딱한 주목 씨앗은 배설물과 함께 배설합니다. 주목은 새들의 소화기관이 씨앗까지 소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자식들의 새들에게 맡긴 것입니다.
그리고 주목은 번식전략으로 씨앗에 독을 넣어두었습니다. 이것은 새가 아닌 포유류 같은 짐승들이 자신의 열매를 따먹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포유류는 열매를 씹어 먹기에 씨앗이 깨지거나 소화기관에서 분해되기 때문입니다. 자칫 일 년 농사가 수포로 돌아감을 방지하기 위한 극약처방입니다.
주목의 극약처방이 인간에게 이로운 약이 되는 것처럼, 식물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발산하는 독인 '피톤치드' 또한 인간에겐 약이 되는 물질입니다.
독과 약은 종이 한 장 차이 라고 합니다. 식물 중에는 치명적인 독초도 있지만 적은 양의 독은 인간에게는 약이 될 수 있습니다. 피톤치드 같은 약한 독에 자극을 느낀 인간의 몸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방어 체계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면역력이 높아지고 생명유지 기능이 활성화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작은 주목의 열매 하나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 하루입니다. 식물을 알면 지구의 역사가 보인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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